노숙자들의 아름다운 홈커밍

  • 등록 2011.12.01 10:26:08
크게보기

“지금도 간혹 꿈속에서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이 떠올라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서울 성동구 송정동 서울시립 게스트하우스(노숙인쉼터)에서는 29일 오랜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사회 복귀에 성공한 10명의 ‘노숙생활 선배’와 ‘현재 노숙인’인 30여명의 쉼터 입소자들이 만나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열리는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행사다. 이날 노숙인 선배들은 자신들이 살아온 길을 고백하고, 어떻게 역경을 이기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었는지를 ‘후배’들에게 털어놓았다.

김모(64)씨는 이날 “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인쇄업을 접고 빚에 시달리다 결국 거리로 나앉았다”며 “힘든 거리 생활을 하면서도 재기에 성공한 것은 나를 사랑했던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6년 노숙인 시설 입소 후 서울시에서 마련해준 일자리를 통해 꾸준히 돈을 모아 지난 2009년 LH공사의 단신자 매입임대주택을 구하며 자립에 성공했다. 김씨는 사랑하는 아내와의 재결합에도 성공했다.

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이모(53)씨는 “1997년 페인트점을 운영하다 부도를 맞은 후 호주머니를 뒤져보니 단돈 280원밖에 남지 않았고, 가족도 모두 곁을 떠났다”며 “자살하기 위해 부산 태종대를 찾았지만 그래도 죽지 않고 노숙인 시설을 찾은 것은 아내와의 오붓했던 신접살림 추억과 눈에 밟히는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노숙인 시설에 머물며 벌어들인 돈을 매일 은행에 입금, 지난해 1000만원을 채워 독립했다. 현재 그는 강원 홍천군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도시 빈민으로 태어나 고아처럼 자란 후 계속된 좌절로 결국 알코올의존증에 빠졌던 이모(61)씨의 사연도 기구했다. 노숙인 쉼터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계속 술을 마셨던 이씨는 “지난 2003년 최후의 선택으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으며 알코올의존증에서 벗어나 자활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의 사연을 얘기하며 아직도 꿈속에서 가족들 모습이 어른거린다며 가족 얘기를 공개했다. 그는 “스물여섯살 먹은 큰아들과 스물세살 난 둘째아들의 어린 모습, 그리고 평생 고생만 한 집사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눈물을 훔쳤다.

이날 행사를 진행한 사회복지사 임선미씨는 “노숙인들이 재활에 성공하기 위해선 일자리를 갖고,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가족’의 힘”이라고 말했다.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Copyright @2004하늘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

등록번호 : 서울다10295 등록연월일 : 2003년 11월 07일 제호 : 하늘문화신문 발행인 : 김동원 | 편집인 : 김동원 주소 : 서울시 강동구 천호대로1139 강동그린타워 11층 R1135 발행연월일 : 2004년 03월 05일 전화 : 02-6414-3651 팩스 : 0505-300-3651 copyright c 2004 하늘문화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