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기 위한 ‘가족 대신 장례’ 그 첫걸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은 혈연관계와 법적 관계가 서류로 제시되지 않으면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이 장례를 치를 방법이 없었다. 평생을 함께 살아온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도, 심지어는 유언장으로 살아생전 공증을 받아 두었던 친구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에 참여한 사실혼 관계의 남편은 “내 아내는 무연고사망자가 아닙니다.”라며 울분을 토하고, 또 다른 분은 “처벌을 받아도 좋으니 내가 할 수 있게 해 달라” 며 간청하기도 했다.
2015년 이후 서울시 무연고 장례를 지원해 온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이러한 장례 제도의 문제점과 실태, 그리고 제대로 애도할 수 없었던 당사자의 목소리와 사례를 다양한 언론 매체를 통해 알려왔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화우공익재단과 함께 가족 대신 장례의 법적·제도적 개선을 위해 ‘사후자기결정권 국제심포지엄’ 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러한 결과들이 모여 11월에는 보건복지부가 무연고사망자의 장례를 동거인과 친구 등이 치를 수 있도록 장례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후속 조치의 하나로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사 업무 안내’에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도 연고자가 될 수 있다는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했으며, 삶의 동반자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하는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했다.
이 지침은 전통적인 혈연 중심의 가족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발생하는 사회적 변화를 반영했으며, 사망자의 의사를 존중하여 사망 후 장례절차·방법 등에 대한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했다. 이로써 혈연관계가 아닌 사실혼 관계, 친구, 지역공동체 등 삶의 동반자였던 사람이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즉, 혈연 중심 사회에서 관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하나의 전기가 마련된 것이라고 평가할만하다.
사실상 시신을 관리하는 자는 누구?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2조제16호는 연고자에 관해 규정하고 있다. 연고자의 범위는 배우자, 자녀, 부모, 손자·소녀(자녀 외의 직계비속), 할아버지·할머니(부모 외의 직계존속), 그리고 형제·자매까지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고자 없거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할 경우 행정기관이 연고자가 된다. 여기에 더해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 또한 연고자가 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나 규정이 없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가 ‘2020년 장사 업무 안내’에서 구체적 예시로 이를 명확히 했다.
첫째,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사실혼 관계는 장례방식 등의 사후 자기결정권에 있어 가장 안타까웠던 사례 중의 하나였다. 그동안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에 부부관계로 인정받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장례도 치를 수 없었다. 이제는 사실상 혼인 의사가 있고 사회적·실질적으로 부부가 되겠다는 합의로 혼인 생활을 했던 사람이면 누구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경우 실제 같은 주소에 동거하는 것으로 사실혼 관계를 증명할 수 있지만, 주민등록상 세대가 분리되어 있어도 무관하다. 또한 친척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경제적 공동체를 증명할 수 있는 공동지출 서류만 있어도 사실혼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둘째, 가족관계등록부 등의 서류상으로 법률적 가족관계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실제로 친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 관계에 있는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친자관계이지만, 법률적 가족관계는 아닌 아들이 생모를 돌봤을 경우, 그리고 형제이지만 법률상으로는 형제 관계가 아니어도 장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3월 말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에 참여한 분은 고인이 큰아버지의 아들이니 법률상 본인과는 사촌 관계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두 분은 친형제 관계였다. 어려웠던 시절 아버지가 형을 큰 집으로 입적을 시켰고,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큰아버지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안타깝게도 형은 무연고사망자가 되었다. 형이 아플 때면 친동생이 돌보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도왔다. 하지만 동생은 형의 장례를 할 수 없었고, 무연고 공영장례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지침마련으로 향후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이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셋째, 조카와 며느리는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서 연고자가 아니었기에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정말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조카와 며느리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는데도 법으로는 연고자가 아니고, 장례를 치르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친족 관계 증빙서류만 있으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바라보다 보면 정말이지 그동안의 법률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고 비상식적이었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넷째, 장기간 지속해서 동거하며 생계나 주거를 같이한 경우, 실질적 부양이나 경제적 지원 및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 지속적 간병이나 돌봄을 제공한 사람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월 중순 84세 할머니의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가 있었다. 여기에 참여하신 분들은 고인을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살았다. 친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이웃분을 어머니로 모시라고 유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고인을 20년 넘게 가족으로 모시며 살아왔지만 서류상으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다가 미처 마치지 못하고 어머니를 무연고사망자로 보내야 했다. 장례에 참여한 분들은 명절과 생일이면 언제나 함께했었고 자녀들의 자격으로 병원에 모시고 갔으며 같은 집에서 함께 살았기에 “우리는 가족인데, 왜 장례를 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토했다. 그뿐만 아니라 요즘은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들이 다양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돌봄은 그냥 서비스가 아니다. 이를 통해 정서적 유대관계가 맺어지고 돌아가신 후에 실질적으로 장례 할 사람이 없다면 돌보셨던 분들이 장례를 하고 싶어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하지만 그동안은 방법이 없었다. 이제는 정기적 생활비 등 사적 이전 입금, 병원비, 간병비 등 지급명세, 지속해서 사망자 돌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만 있어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다섯째, 많이 사람들이 생전에 유언장을 작성하고 공증을 받으면 누구에게든 장례를 부탁할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이러한 유언장은 참고사항일 뿐이었다. 만약 고인의 연고자가 장례를 하지 않겠다고 국가에 고이의 시신을 위임한다면 고인은 생전 유언과 달리 무연고사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유언장은 실제로 유언자의 장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공증문서 및 유언장 등의 공적 자료가 있다면 유언에 따라 장례주관자로 지정된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 사후에 본인의 장례를 누가 맡아서, 어떠한 방식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생전자기결정이 이제는 사후결정권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을 장례주관자로 지정한 유언장을 종로구청장에게 발송한 70대 어르신이 있다. 그분의 유언장에는 “제가 돌연사 시 장례지원단 등을 통해 화장 후 강에 뿌려 시신 흔적을 없애 주시기를 간곡히 호소드립니다.”라고 되어있다.
나눔과나눔은 몇 년 전에 유언장을 받았지만, 그동안은 장례 약속을 지킬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르신께 장례를 꼭 치러드리겠다고 약속할 수 있게 되었다.
여섯째, 친구·이웃 같은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 활동 등에 따라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경우에도 장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월 초 쪽방 주민 분의 서울시 무연고 공영장례가 있었다. 쪽방 주민들은 고인의 연고자를 설득해서 함께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연고자가 장례를 거부하면서 함께 쪽방에서 동고동락하던 주민을 무연고사망자로 보낼 수밖에 없었고, 공영장례에 참여하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리고 5월 말 한 교회에서 돌보시던 어르신이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돌보던 교회분들은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고 싶었지만 연고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장례가 거부됐다. 이제는 이러한 분들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관계의 탄생의 역사적 순간, 한계는 여전
2020년 보건복지부의 장사 업무 안내 지침이 혈연과 제도를 넘어 동행의 관계로 가는 길을 열기 시작했다. 생전의 자기결정에 따라 사후 본인이 원하는 방식대로 장례를 할 수 있는 사후자기결정권에 대한 국가의 첫 번째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법과 제도의 여러 곳에는 혈연 중심의 가족주의가 남아 있다. 그래서 앞으로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 도처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느리지만 변화의 흐름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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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장례에도 공공성이 필요하다”며 ‘공영장례’를 주장하고, 장례 등의 ‘사후자기결정권’과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말할 때 사람들은 낯설어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단어들을 사회 여러 곳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의 흐름이 결국은 멀지 않은 시점에 혈연의 종언(終焉)을 선언하는 그 날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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