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생태계라는 거대한 시각으로 봤을 때 죽음은 또 다른 관계망의 시작이다. 오랫동안 숲을 지키던 나무 한 그루가 생을 마감했다고 치자. 장수하늘소가 산란을 하고 애벌레를 먹기 위해 날아온 딱따구리가 구멍을 뚫고 집을 짓는다.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에서 흘러나온 수액은 작은 곤충들의 달콤한 음료가 되고 점점 분해되어 가던 나무가 결국 쓰러지면 쓰러진 나무 틈으로 족제비가 몸을 숨기고 도마뱀이 집을 짓는다. 축축한 숲 바닥에서 이끼들이 올라와 쓰러진 나무를 뒤덮으면 그 속에 거미가 알을 낳고 버섯이 자라기 시작한다. 버섯을 먹기 위해 달팽이와 짐승들이 나무를 찾고 숲은 다시 새로운 순환을 시작한다. 불교 교리 중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게 있다. 다양한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말이다. 국외 포교에 앞장서다 2004년 열반에 든 숭산 스님은 `불생불멸`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할 때 `no appearing, no disappearing`이라는 말로 대신했다고 한다. 즉 세상에는 새롭게 나타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이 개념 안에서 보면 살고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모든 것은 우주 안에 이미 있었고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있는 것이다. 나무라는 형태로 있든, 딱따구리 뱃속에 있든, 아니면 흙이 됐든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과학도 불생불멸을 인정한다. 특히 환경이나 생태이론에서는 이미 그 중심에 불생불멸이 자리잡고 있다. 산림학자이자 숲 해설가인 차윤정 씨가 쓴 `나무의 죽음`은 우리가 흔히 죽었다고 말하는 쓰러진 나무의 새로운 삶을 치밀한 시각으로 정리한 책이다. 놀라운 건 숲 전체 생태계 중 30% 정도가 죽은 나무에 의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이다. 나무는 죽었지만 결코 사라지지는 않은 것이다.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