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하남성 여남현 김·남씨 연구회원들 ●시조묘역 찾아 영양 방문후 자매결연 영양군 영양읍이 한 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자리잡은 "영양남씨" "영양김씨" 공동시조 묘역에 중국인 5명이 큰 절을 올렸다. 이들은 중국 허난(河南)성 루난(汝南)현에서 온 "여남현 김·남씨 연구회" 회원들로, 1천250년전 여남현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와 영양남씨·영양김씨의 공동시조가 된 남민(南敏)과 그의 후손들에게 예를 올린 것이다. 여남현 김·남씨 연구회원들은 조상의 흔적을 찾아 영양까지 왔으며, 묘역뿐 아니라 남민과 그의 후손들이 학문을 닦고 후학들을 가르쳤던 "여남강당"도 들러, 그들의 조상이 이땅에서 남긴 업적을 기렸다. 남민이 이땅에 첫발을 디뎠던 영덕도 찾았다. 이날 영양에 온 김·남씨 연구회원들은 모두 여남현 공무원이며, 이중 겅루이씨(48·여남현 상무 부현장)는 여남현의 간부다. 겅루이씨는 이날 영양군청을 방문해 권영택 영양군수에게 "조상이 훌륭해서 후손들도 다 잘 돼 있다. 여남현과 영양군이 자매결연을 맺자"고 제안했고, 권 군수는흔쾌히 응했다. 또 이들은 안내한 영양남씨 문중인사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문중차원에서 여남현에 영양남씨·영양김씨 기념관을 만들겠다"고 말해, 같은 조상이라는 인연때문에 영양군과 여남현 간 교류의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인다. 겅루이씨 일행은 17일 영양남씨에서 분파된 의령남씨의 근거지인 경남 의령도 방문한 뒤,18일 중국으로 돌아갔다. 남민은 서기 755년 당나라 사신으로 일본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자 신라땅인 유린지(지금의 영덕군 축산면)로 대피한 후, 이땅에 정착해 살았다. 남민의 원래 이름은 김충(金忠)이었다. 신라 경덕왕이 남민이 여남현에서 왔다고 남(南)씨 성을 하사했고, 민첩하다고 민(敏)이란 이름을 붙여줘 남민이 됐다. 남민과 함께 왔던 남민의 첫째 아들은 남씨 성을 갖기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김석중이란 이름을 그대로 썼지만, 둘째 아들부터는 남씨 성을 썼다. 김석중의 후손들이 영양김씨 혈족을 이어갔지만, 영양김씨의 원시조는 남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