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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장례문화

"푸미폰 국왕과 평생을 함께" 국왕 문신 유행

타이 최장 재위 푸미폰 국왕 서거 , 세계가 추모 분위기

지난 13일 서거한 푸미폰 국왕(라마 9세) 추모 열기가 이어지는 태국에서 국왕의 모습을 몸에 새기는 문신이 인기를 얻고 있다. 19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최근 방콕과 파타야 등의 유명 문신업소에는 국왕의 생전 모습을 몸에 새겨달라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손님들이 주로 찾는 문신 디자인은 젊은 시절 사진 속 푸미폰 국왕의 모습과 라마 9세를 의미하는 숫자 9다. 또 일부 손님들은 '나는 라마 9세 시대에 태어났다'는 문구를 새겨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방콕에 거주하는 사진가 낫타웃 아난타수꼰은 "나는 인생의 기록과 이야기를 문신으로 남긴다. 최근에는 국왕을 추모하고 기억하면서 옳은 일을 하겠다는 뜻으로 오른쪽 가슴과 뒷목, 빗장뼈에 국왕 문신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연예인과 모델 등 다수의 유명인도 잇따라 국왕의 얼굴이 들어간 문신을 하고 인증사진을 공개하고 있다. 일부 쇼핑몰들은 무료 문신 또는 가격 할인 행사도 진행한다. 이런 국왕 문신 인기 속에서도 일부 업자들은 신처럼 추앙받는 국왕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금기 사항도 만들었다. 푸미폰 국왕의 얼굴이나 국왕의 문장을 아예 문신 도안으로 사용하지 않거나 항상 물건 등과 닿는 손에는 국왕의 얼굴을 새기지 않는다는 등의 원칙이다. 문신업자 낫타웃 나플로드는 "손은 물건 등을 항상 닿기 때문에 이 부위에 국왕의 얼굴을 새겨서는 안 된다"며 "국왕 관련 문신은 신체의 윗부분에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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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푸미폰 국왕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에서 상경하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현지 항공 및 숙박업계는 조문객을 위한 대대적인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방콕항공은 치앙마이, 치앙라이, 람팡, 수코타이, 사무이, 푸껫, 끄라비 등 지방 공항에서 방콕으로 오는 국내선 편도 항공편은 물론, 캄보디아의 프놈펜, 시엠립, 미얀마의 만달레이와 네피도, 라오스의 비엔티안, 방글라데시 다카 등에서 방콕으로 들어오는 국제선에도 특별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또 타이 에어아시아도 국내선과 인근 국가를 오가는 일부 항공편에 대해 특별 할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방콕의 왕궁과 가까운 카오산로드의 호텔들도 지방에서 올라온 조문객들(내국인만 적용)에게 숙박요금을 최대 60∼70% 가량 할인해주고 있다.


관련기사 :   타이 최장 재위 푸미폰 국왕 서거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라마 9세, 88세)이 13일 서거했다. 푸미폰 국왕은 세계에서 가장 긴 재위 기록을 보유한 왕이다. 1946년 6월 즉위해 70년 넘게 태국을 통치했다. 1952년 2월부터 영국을 통치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도 재위 기간이 5년 이상 길다. 수코타이(1238∼1351년), 아유타야(1351∼1767년), 톤부리(1768∼1782년), 랏타나코신(1782∼1932년), 시암(1932∼1939년)에 이은 타이 왕국 등 태국 땅에 존재했거나 현존하는 6개 왕국, 10개 왕조를 통틀어서도 그 만큼 오랜기간 왕좌를 유지한 국왕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푸미폰 국왕이 돋보이는 이유는 오랜 재위기간보다는 국민으로부터 받는 존경과 사랑 때문이다. 푸미폰 국왕은 재위 기간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가난한 국민에게 다가갔다. 입헌 군주로서 상징적인 국가원수였지만 그 영향력은 실권을 쥔 통치자 이상이었다. 재임 기간 무려 19차례의 쿠데타와 20회에 걸친 개헌이 있었을 만큼 태국의 근현대사는 굴곡이 많았지만, 격변과 혼란기에는 어김없이 푸미폰 국왕이 최악의 상황을 막는 구심점이자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현 짜끄리 왕조의 아홉 왕 가운데 초대왕인 붓다 요드파 출라로케 국왕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푸미폰 국왕에게 ‘대왕’(the Great) 칭호가 붙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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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미폰 국왕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당시 미국에서 의학 공부를 하던 중이었다. 친형인 아난다 마히돈(라마 8세) 국왕이 1946년 약관의 나이로 승하한 뒤 즉위했고 대관식은 이듬해 치렀다. 1932년 절대왕정이 폐지되고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이후 추락하던 왕실의 위상은 푸미폰 국왕에 이르러 회복됐다. 푸미폰 국왕은 국교인 불교의 수호자로 한때 출가 생활을 했으며, 막대한 왕실 재산을 수많은 농업 및 지역 개발 사업에 투자했다. 젊었을 때는 직접 산간 벽지의 가난한 농민과 소외된 소수 민족을 찾아가 이들이 처한 문제를 눈으로 확인하고 들었다. 1950년대부터는 한 해에 200일 이상을 시골에서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국왕이 카메라를 메고 산간벽지를 찾아다니며 가난의 실상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국민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푸미폰 국왕은 이런 국민의 소리를 바탕으로 ‘로얄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사업을 추진했다. 사업 영역은 농업, 수자원, 환경, 고용, 보건, 복지 등을 망라했으며, 크고 작은 규모의 로열 프로젝트가 자그마치 4000여건에 달했다.

그는 특히 북부의 소수 종족인 고산족의 복지를 개선해 1988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 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유엔으로부터 제1회 ‘인간개발 평생업적상’도 받았다. 코피 아난 당시 유엔사무총장은 그가 “세계의 개발 왕으로서 신분과 종족, 종교를 초월해 극빈자와 취약 계층을 위해 헌신했다”고 평가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태국을 중진국 반열에 올려 놓고 국민과 두터운 신뢰를 쌓은 그는 군부 쿠데타나 대규모 시위 등 격변기에 권위있는 중재자로 나설 수 있게 했다. 1973년에는 군부가 민주화 시위에 나선 학생들을 향해 발포하자 학생들에게 궁전 문을 개방했다. 1992년에는 민주화 시위 와중에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친다 크라프라윤 당시 총리와 야권을 대표하는 잠롱 스리무리앙 전 방콕 시장이 대립하면서 정치적 불안이 극에 달했다. 푸미폰 국왕은 두 사람을 왕궁으로 불러들여 무릎을 꿇어앉히고 준엄하게 질책했다. 이런 국왕의 모습은 국민에게 깊이 각인됐다. 수친다 전 총리는 결국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이처럼 불안한 정국 속에서도 태국이 동남아시아에서 비교적 높은 자유와 안정을 누리고 있는 것은 푸미폰 국왕이 사회 구심점으로서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대부분의 국민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노령기에 접어든 푸미폰 국왕은 지난 2009년 이후 수 없이 방콕 시리라즈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자 국민은 그의 안위를 크게 걱정했다.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고, 오랫동안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푸미폰 국왕의 부재가 태국 사회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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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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