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08사찰서 108배 드리자” ●혜자 스님이 이끄는 순례단 매번 신도 2000명 이상 참석 ●현지 농산물 단체 구입하는등 신앙열기가 사회운동으로까지 혜자 스님 해일(海溢)이 일어난 것 같았다. 28일 오전 9시 40분 충남 논산 관촉사의 일주문(一柱門)을 지나 밀려 들어오는 인파가 그랬다. 이날은 서울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단’이 관촉사를 방문한 날. 관광버스 62대에서 내린 2600여 신도들은 혜자 스님의 인솔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며 절로 들어섰다. 행렬의 후미가 대웅보전 앞까지 모두 들어오는데만 35분이 걸렸다. 신도들은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마련된 공양미 자루에 준비해온 쌀 한 되씩을 붓고서 자리에 앉았다. 인파는 대웅보전과 명부전, 미륵전 등 전각들과 처마 밑까지 거의 빈 자리 없이 채웠다. 관촉사 주지 태진 스님은 “고려때 혜명 대사가 관촉사를 창건한 이래 1000년만에 최대 인파가 오신 것 같다”고 반겼다. 자리를 정돈한 신도들은 곧 ‘천수경’ 등을 외면서 법회를 시작했고, 미륵불을 바라보며 2600여명이 함께 108배를 올리는 장관이 연출됐다. 혜자 스님은 “바람 소리, 새 소리, 풍경 소리 들으며 자신을 정화하시고 발원(發願)하시고픈 것 모두 기도하시라”고 신도들에게 권했다. 한번에 2000명 이상의 신도가 함께 움직이는 ‘108산사 순례단’이 우리 불교계에 새로운 ‘신행(信行) 풍속도’를 만들고 있다. 혜자 스님이 ‘108산사 순례’를 마음먹은 것은 지난해 ‘선묵 혜자 스님과 함께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라는 책을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당초 신도들에게 사찰 순례를 권할 마음으로 책을 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 역시 국내에 못 가본 절이 많았습니다. 이 기회에 108사찰을 찾아, 108배 기도하면서, 108번뇌를 소멸시키자는 뜻에서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신도들 개인의 신앙열기를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였다. 지난해 9월 도선사를 첫 회로 시작한 산사순례는 매달 한 곳씩 사찰을 찾고 있다. 3보(寶)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를 거쳐 서울 경국사를 방문하고 이날 여섯번째 순서로 관촉사를 찾게 된 것. 순례 때마다 참가자들은 해당 사찰의 이름이 새겨진 염주를 한 알씩 받는다. 또 혜자 스님의 저서 ‘108산사’ 중 해당 사찰의 페이지에 순례의 감상을 적고 스님의 낙관을 받는다. 출석 확인증인 셈. 108알을 모두 모으면 염주가 완성되고, 한 쪽씩 적은 신행일기는 책이 될 수도 있다. 혜자 스님은 “그 염주와 신행일기를 보면 후손들이 부모의 마음을 저절로 느낄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개인의 신행기록이자, 한 집안의 가보(家寶)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양에서 왔다는 한 70대 여신도는 “서울 친척집에서 자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며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참가해 자식들 잘 되라고 기도하는데 힘들기 보다는 마음 뿌듯하다”고 말했다. 순례단은 송광사 순례 때부터는 현지 농산물 구입하기 운동도 벌이고 있다. 혜자 스님은 “3000명이 1만원어치씩만 사도 3000만원 어치가 된다”며 “우리 농촌도 살리고, 신도들도 좋은 농산물을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날은 논산 특산 딸기와 강경 젓갈을 파는 좌판이 일주문 밖에 펼쳐져 주로 여성인 신도들의 발길을 잡았다. 이날 순례단은 인근 육군훈련소도 방문했다. 참가자들은 각자 초코파이 12개 들이 한 상자씩을 가져와 군법당에 보시했다. 한 달에 1~2곳을 순례할 ‘사찰순례’는 앞으로 6~7년이 더 걸릴 대장정. 혜자 스님은 “사찰순례는 부처님을 찾아가는 소풍”이라며 “농어촌돕기운동 뿐 아니라 환경보호운동 등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운동을 접목하면서 마지막까지 ‘칭찬받는 순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조선일보]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