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특이성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일상적이지 않은 특이한 사건이나 현상은 뉴스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연예인들의 죽음은 바로 그런 특이성 때문에 뉴스 소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많은 청소년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요, 한 번쯤 데이트하고 싶은 사람 중에서 늘 상위 순위에 오르는 여성 연예인들은 부러움과 관심이 대상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으며, 방송사는 호들갑을 떨면서 이들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다. 흔히 말하기를 군수산업과 담배산업은 "죽음을 파는 장사꾼"이라고 한다. 이들 산업은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돈을 버는 속성 때문에 이런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데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방송이다. 근래 잇달아 유명 연예인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는 가운데 공공성이 강조되는 방송사에서조차 아침부터 시시콜콜 그 죽음에 대하여 보도하고 있기 때문에 방송이 죽음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KBS와 같은 공영방송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어떤 연예인이 죽은 날부터 장례식까지 드라마 엮듯이 현장에서 보도하는 것을 보면서 방송사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는 고사하고 산 사람, 즉 수용자에 대한 기본 예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건 죽음은 가장 안타까운 것이며, 한 사람의 목숨이 지구보다 더 무겁다는 마음만 있다면 죽음이 선정적, 상업적인 상품으로 포장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 엿가락 늘리듯 시도 때도 없이 죽음을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유명 연예인도 죽음 앞에서는 가엾은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왜 죽었는지, 친구는 누군지, 부모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소속 기획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장례는 어떻게 지냈는지 등등을 국민들이 꼭 알아야 하는 정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송사는 귀한 생명이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있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역할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을 이야기 하면 남의 슬픔을 이용해서 돈을 벌자는 나쁜 행위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객관적인 정보 몇 가지만 전해주면 충분하다. 사람의 죽음은 다른 사람이 멋대로 말하고, 상품화해서 파는 그런 영역이 아닌 것이다. 누군가 나서 "국민의 알권리" 운운 하면서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람의 죽음을 상품화하는 것까지도 알권리 영역에 들어간다는 생각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요즈음 계속되는 연예인 죽음 앞에서 방송사들이 연예인이든 누구든 죽음에 대하여 보도할 때 극히 절제된 자세를 보여주기 바라며, 내부적으로 그렇게 할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미디어오늘]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