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들로부터 기증·위탁받은 제대혈을 무허가로 배양한 후 만들어낸 세포치료제를 불법으로 제조·판매한 제대혈은행 전 대표와 병원 의사 등이 대거 경찰에 붙잡혔다. 불법적으로 유통된 제대혈 줄기세포들은 루게릭·파킨슨 등 난치병 환자들뿐만 아니라 일부 상류층의 노화방지(안티에이징)를 위해 이식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산모들에게서 기증·위탁받은 제대혈을 불법적으로 배양해 제대혈 줄기세포를 대량 제조·유통시킨 혐의(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및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제대혈은행 전 대표 한모씨(59)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일 밝혔다. 경찰은 한씨에게서 제대혈 줄기세포를 받아 병원에 유통한 혐의로 이모씨(56) 등 유통업체 대표 8명도 불구속 입건했다. 김모씨(51) 등 병원 의사 15명은 한씨와 이씨로부터 제대혈 줄기세포를 산 뒤 난치병 환자들에게 수천만원을 받고 불법으로 이식한 혐의로 입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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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 결과 한씨는 2003년부터 8년 동안 제대혈에서 제대혈 줄기세포를 분리·추출한 뒤 이를 14~20일 동안 배양해 세포치료제를 대량 생산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세포치료제는 1만5000유닛(unit)에 이른다. 한 유닛은 산모 한 명에게서 채취한 제대혈량으로 평균 80~100㎖ 정도다. 경찰은 한씨가 이 세포치료제를 만들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불법 의약품을 생산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씨는 2009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이 세포치료제를 유통업체 11곳과 병원 13곳에 판매했다. 세포치료제는 유닛당 100만~200만원가량에 거래됐다. 한씨는 모두 4648유닛을 팔아 309억~464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약 46억원을 챙겼다. 이렇게 퍼져나간 세포치료제는 주로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이식됐다. 이 세포치료제를 사들인 병원 의사들은 당뇨, 암, 고혈압, 뇌경색, 치매, 파킨슨 등을 앓는 환자들에게 한 번에 3유닛 정도를 이식하면서 2000만~3000만원씩을 받았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유통업자와 의사들이 판매 및 이식비용으로 300억원가량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 관계자는 “임상시험을 거치지 않아 의학적 안전성·유효성이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을 절박한 상황에 놓인 난치병 환자들에게 팔았다”고 말했다.
또 현행 ‘제대혈 관리 및 연구에 관한 법률’은 영리 목적으로 제대혈과 그 밖의 부산물을 매매하는 행위를 일절 금지하고 있다. 제대혈 이식 역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한 장기골수이식의료기관에 한정해 실시하고 있다. 이번에 적발된 의사들이 속한 병원들은 지정된 46개 의료기관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일부 사회 상류층 인사들이 이 세포치료제를 ‘안티에이징’ 시술을 위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에 사들여 이식받은 사실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에 있는 난치성 질환 환자들이 저렴하게 제대혈을 이식받을 수 있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방증하는 대목”이라며 “제대혈 줄기세포가 안전이 검증되지 않은 채 만능치료제로 둔갑해 유통되지 않도록 제대혈은행에 대한 정밀점검 필요성이 높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대혈
산모와 태아를 잇는 탯줄 속에 흐르는 혈액이다. 혈구와 혈소판을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다량 함유돼 있다. 연골, 뼈, 근육, 신경 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를 갖고 있어 백혈병 등 난치성 질환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제대혈안에는 인체 내의 면역 체계와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조혈모세포와 우리 몸을 이루는 조직, 장기의 조상 세포인 줄기 세포가 있다. (사진출처 : 미즈여성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