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향군인회(향군) 회장이 비리를 저지르면 국가보훈처가 직무정지나 해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제화하고, 각종 수익사업도 향군 운영과 분리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보훈처는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향군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보훈처는 조남풍 전 회장과 같이 향군 회장이 재임 기간에 추문을 일으킬 경우 직무정지나 해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법령을 정비할 계획이다. 현행법상 보훈처는 향군의 관리감독 기관이지만 향군 회장이 문제를 일으켜도 직무정지 등 적절한 인사 조치를 할 수 없다. 조 전 회장의 비리 의혹이 발생했을 때 보훈처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보훈처는 또 향군 회장의 전횡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비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향군 운영과 산하 수익단체 경영을 완전히 분리하기로 했다. 현재 향군은 상조회를 비롯해 산하에 약 10개의 수익단체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권 규모가 크다. 보훈처는 조 전 회장의 비리도 그가 작년 4월 회장 선거에서 대의원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뿌린 데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따라 ‘돈 안 드는 선거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보훈처는 향군 개혁 방안을 추진할 ‘향군 개혁 비상대책위원회’를 28일 출범시키기로 했다. 비대위는 위원장인 최완근 보훈처 차장과 10명의 위원, 5명 이내의 자문위원으로 구성된다. 위원과 자문위원에는 향군 안팎의 법률, 회계, 경영 전문가들이 선임될 예정이다. 비대위는 수익사업 및 인사관리 개선, 선거제도 개선, 감독권 강화 등 개혁방안을 마련해 향군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지침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앞서 향군은 지난 13일 대의원 임시총회를 열고 조 전 회장 해임안을 통과시켰다. 조 전 회장은 지난해 3~4월 자신에게 투표해달라며 전국 대의원 200여명에게 약 10억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18일 구속 기소됐다. 그는 또 지난해 9월 향군 사업 수주를 도와주는 대가로 사업가 조모씨에게 선거과정에서 발생한 자신의 채무 4억원을 대신 갚게 하고, 인사청탁 명목으로 향군상조회 대표 이모씨와 향군상조회 지부지사장 박모씨로부터 각각 6000만원과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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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향군인상조회 이상대 대표가 지난 15일 퇴임했다. 검찰에 배임수증죄로 기소당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재향군인상조회 내부에서는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자조적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이제 지긋지긋한 파벌 싸움 좀 그만하고 일만하고 싶다"고 한숨을 내쉰다. 재향군인회 회장 선출에 따른 사장 임명에서 벗어난 '전문성'을 지닌 경영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자공시시스템과 재향군인상조회에 따르면 재향군인상조회는 상조회원 30만 명, 장례사업예수금 2000여억 원(2014년 기준)을 보유한 업계 3위의 거대 상조회사다. 프리드라이프, 보람상조를 제외하면 국내 최대 규모다. 당기순익만 13억 2600만원에 달한다. 상위조직이 재향군인회기 때문에 회원 중 상당수가 국가 유공자들이거나 재향군인회 회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재향군인상조회의 '강점'이 발목을 잡았다. 지난해 4월 재향군인회 조남풍 전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돈 선거'논란에 휩싸이며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다는 것. 신뢰를 담보로 고객들과 소통하는 상조회사로서는 상위조직의 '금권선거' 의혹은 곧바로 현장에 영향을 끼쳤다.
익명을 요구한 재향군인상조회 실무자 A씨는 "현장에 나가면 체감상 3-40% 고객들이 조남풍 전 회장에 대해 물었다. 믿을 수 없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서비스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한 재향군인상조회 고위 관계자 B씨는 "지금이야말로 재향군인회 본회와 별도로 새로운 사장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수금만 2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상조사의 대표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 본회 국제 팀장이 사장 대행으로 와 있다. 하지만 고작 2달 남짓 있는 사장 대행이 무슨 일을 추진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B씨가 즉각적인 대표 선임을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대표자리가 공석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동안 재향군인회 산하 조직으로서 본회에 지나치게 많은 '눈치'를 봐야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재향군인회 실무자 C씨는 "상조회 대표가 본회 회장과 함께 바뀌다보니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본회 선거 직전부터 '라인타기'가 벌어진다"며 "사내에서 가장 힘 있는 '의전부장' 자리는 대표에 따라 바뀐다고 보면 된다. 그 자리에 있는 인사가 라인을 잘 타면 남아 있고 못 타면 대표 라인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재향군인회 본회 회장에 따라 대표가 바뀌는 것이 관행이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상조사 내에서도 파벌과 '줄타기'가 공공연하게 벌어진다는 것. B 씨가 주장한 상조회 별도의 대표선임은 이런 병폐를 끊자는 취지다.
이에 대해 재향군인상조회 관계자는 "누가 그런 소릴 하냐"며 "그런 사실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전문가의 해석은 달랐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병훈 교수는 "해당 제보내용은 특정 집단이 회장 등 힘을 가진 특정 개인에 의해 조직이 좌우되는 경우"라며 "이런 경우 제보 내용대로 내부적으로 정치적 파벌 등이 형성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보자들이 익명을 요구한 것에 대해서는 "내부고발자(제보자)가 실명을 밝히길 꺼리는 경우는 일반적으로 권력에 대한 견제(감사 기관)이나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 제도가 미비한 경우"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