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박물관(관장 심봉근)이 발굴한 경남 사천시 늑도유적의 ‘2000년 전 공동묘지’에서 개 유골 27마리분이 발굴돼 화제다. 주인을 따라 개를 순장(殉葬)시킨 것인지 아니면 죽은 개를 사람과 같은 묘역(墓域)에 묻은 것인지, 우리나라에서 개고기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등을 놓고 논쟁도 한창이다. 이동주 동아대교수(고고학)는 31일 “지난 2000년 발굴했던 늑도유적의 패총(貝塚)에서 인골 26명분과 개 유골이 나와 최근 들어 분석이 진행되고 있다”며 “인골과 개 뼈가 나온 곳은 40×30m 크기의 공동 묘역(墓域)”이라고 밝혔다. 이들 개는 사람 바로 옆에 묻힌 경우도 있지만, 인골과 7~8m 이상 거리를 두고 묻힌 경우도 있다. 잉카나 마야문명 등에서는 자신이 기르던 개가 죽으면 천 등으로 두른 뒤 묻어, 훗날 ‘개 미라’로 발굴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고대(古代)에 사람과 개가 함께 묻힌 유적이 발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 뼈 분석은 고대(古代) 동물 뼈 전문가인 미야자키 다이지 일본 오사카부 매장문화재센터 연구원이 맡았다. 분석 결과 ?죽기 직전에 가해진 외상이나, 뼈를 발라내기 위한 칼자국이 전혀 없고 ?뼈가 부러진 뒤 자연 치료된 개도 5마리나 되며 ?등까지의 높이가 30㎝ 미만인 작은 개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종(種)은 4가지 이상인데, 성별이 확인된 15마리 모두 수컷이며 ?이빨의 마모도 등을 볼 때 어린 것도 많고 ?함께 묻힌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이거나 어린아이라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이를 통해 ‘당대 사람들은 개를 먹지 않았으며, 개 크기나 늑도가 좁은 섬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사냥용이 아니라 애완용이었고, 장애견(犬)을 기를 정도로 개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다’는 추정이 나왔다. 미야자키씨는 개가 순장됐을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순장된 것이라면 사람(개 주인) 바로 옆에 묻어야 할 텐데 독립된 상태로 묻힌 개도 많다는 점에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천 늑도유적에서는 한사군의 하나였던 낙랑의 토기와 중국계 유물이 많이 나와, 이 지역이 낙랑 등 중국과 왜(倭) 등을 연결하는 경제 요충지였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