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애도의물결, 조문어록, 그리운추억들, 묘역일화

<故 김영삼 前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상세보도-2

●꽃다발 든 어린이 등 주민 수백명 나와서 작별●


영결식을 마친 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운구 행렬은 서울 동작구 상도동 사저로 향했다. 1969년 이후 대통령 재임 시절을 제외하고 줄곧 머물렀던 곳이다. 독재정권 시절에는 고초의 상징이었고 대통령 당선 때는 환희의 공간이었다. 26일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귀가’를 지켜보기 위해 상도동 주민 70여 명이 사저 근처 골목을 가득 메웠다. 오후 4시 10분경 김 전 대통령의 운구차인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사저 앞에 도착했다. 김 전 대통령의 손자이자 장남 은철 씨의 아들인 성민 씨가 두 손으로 고인의 영정을 품에 안은 채 마당으로 들어섰다. 차남 현철 씨 등 유족 20여 명도 성민 씨의 뒤를 따랐다. 손명순 여사는 건강 상태를 고려한 듯 차량에서 내리지 않았다. 자택 현관 계단을 통해 집으로 들어선 성민 씨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안방. 현관 복도 좌측의 안방을 한 바퀴 돈 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맞은편 식당으로 옮겨졌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김 전 대통령이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 마지막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서일까.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1분가량 거실에서 머물렀다. ‘ㄷ’자로 소파가 놓인 이곳 벽면 정중앙에는 직접 쓴 붓글씨 ‘송백장청(松柏長靑)’을 담은 액자가 걸려 있었다. 좌측에는 미국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부자와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었고 오른쪽에는 젊은 시절 김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하는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2층과 옥탑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그대로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 상도동 사저에 머무른 시간은 약 6분. 김 전 대통령이 이곳에 머문 46년이라는 세월을 감안하면 짧은 시간이었다. 집 밖으로 나온 유족은 차분한 표정으로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운구 행렬은 근처 500여 m 거리의 기념관 앞에서 5분여 머무른 뒤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겼다. 담담한 유족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일부 상도동 주민은 울음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맞이했다.


5일간 3만6900명 김영삼 전 대통령 애도 물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울대병원 빈소에는 지난 22일부터 26일 오전까지 닷새간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6·25 전쟁 직전인 1950년 정계에 첫발을 내디딘 고인의 인생 역정이 제1공화국에서 제6공화국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한국 현대 정치사와 궤를 같이했다는 사실을 확인이라도 하듯 세대와 정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이 빈소를 직접 찾아 영면을 기원했다. 정·관계는 물론 재계 인사들과 주요 외교사절, 개인적 인연이 없는 일반 시민까지도 영정 앞에 헌화하며 서거를 슬퍼했다. 26일 유족 측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22일부터 영결식 당일인 이날 오전 11시까지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약 3만6900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하루 평균 약 7380명, 시간당 307명이 빈소를 직접 찾은 셈이다. 이날 오전에만 1200명이 조문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3일 오후 7박10일간의 다자회의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조문했으며, 26일 오전에도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거 당일 직접 찾아 조문했고, 전두환 전 대통령은 영결식 전날인 25일 오후 빈소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도 빈소를 찾아 유족을 위로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도 고인의 차남 현철씨와 손을 맞잡았다. 고인과 함께 이른바 ‘3김 시대’를 풍미했던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서거 당일 휠체어를 탄 채 직접 빈소를 찾아 유족들과 함께 고인과의 옛 경험을 나누며 명목을 빌었다.


고인의 가신 그룹인 상도동계 인사들은 첫날부터 상주 역할을 맡아 유족 대표인 현철씨와 조문객들을 맞았다. 최측근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장관은 몸이 불편한데도 한달음에 달려왔고, 핵심 멤버였던 김수한·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 등도 내내 자리를 지켰다. 한국 현대 정치사의 양대 축을 형성했던 동교동계의 좌장인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상임고문은 서거 이튿날 빈소에 조문한 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분향소를 지켰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독일 출장 일정을 축소하고 귀국하자마자 공항에서 빈소로 직행했고,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이종걸 원내대표와 정의당 심상정 대표도 빈소에서는 여야를 잊었다. 재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았고,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 대사와 추궈훙 주한중국 대사 등 외교사절도 애도를 표시했다. 일명 ‘용팔이 사건’으로 알려진 통일민주당 창당 방해 사건의 주범 김용남씨, 상도동 사저 요리사였던 이한규씨 등 시민들의 조문도 끊이지 않았다.


YH, 민주화, 조깅, 대구탕…YS의 추억


지난 22일부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던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마지막 국립묘지 안장식에 이르기까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대통령, 정치인, 민주화 투사, 그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의 '김영삼'을 회상했다. '민주투사'이자, 친근한 동지,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의 모습을 보여주는 회고들을 소개한다.


◇"그것은 YS만이 할 수 있는 일이야. 금융실명제는 일본도 못하고 있어. 일본 정상들 만나면 자기들이 그거 해보겠다고 하는데 아직 못했어"(지난 22일 이명박 전 대통령,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YS의 업적으로 하나회 척결을 언급하자)

◇"내가 조그마한 성의로 '박정희 대통령이 괴롭혀 드린거 조금이라도 좀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해서 옆에 와 있다'는 애기를 한 번 (YS에게) 했거든요. 그랬더니 조용히 웃으십디다."(지난 22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 전 대통령과의 60년 세월을 회고하며)

◇"에너지를 다 쓰신 것 같아. 기를 쓰고 다 가셨어. 암이나 이런 질병은 (피부가) 새카맣게 되는데 안 그러셨다."(지난 25일 정의화 국회의장,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표정이 편안해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YH여공 사건 이거 엄청 큰 일이었다. 훌륭한 일 많이 했는데 IMF 때문에 다 묻혀가지고 안타깝지."(지난 24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적어놓은 신문기사를 보다가)

◇"우리당 창당 60주년 기념행사할 때도 다들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싶어했습니다. 40대 기수론 때 김대중 후보에 패한 뒤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김대중 후보 지지연설하는데 그게 엄청났죠. 우리나라 야당사에서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지난 22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김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 업적을 회고하다가)

◇"언론사 정치부장들이랑 식사를 잡아놨는데 나는 5분전에 갔는데, YS는 벌써와서 다다미방에 혼자 뒷짐지고 서성거리고 있더라. 약속을 정말 칼같이 지키는 분이다. 사적인 약속이든 뭐든 항상 5분, 10분전에 가 계신다."(지난 24일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자신의 정치입문 당시를 설명하다가)

◇"각하는 매일 오전 5시에 조깅을 뛰셨다. 캄캄할 때. 35년 동안. 그러니까 저것 하나만으로도 대통령 되심에 충분하다고 누가 그랬어."(지난 24일 김기수 전 대통령 수행실장,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다가)

◇"밤에 찾아가면 직접 와인을 꺼내주셨죠. 심지어 주일날 아침에 가면 당신 옷갈아 입는 침실까지 들어오는 것을 허용해주실 정도로 인간미가 넘쳤습니다."(지난 23일 이낙연 전남도지사, 본인의 기자시절 YS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YS는 자기가 '돈 정거장'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들어오는 돈이 있더라도 돈을 다 나눠주다 보니까."(지난 25일 강인섭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 전 대통령과의 과거 추억을 회상하며)

◇"다정다감하신 아버지였어요. 업어주시기도 하고. 막내딸이니만큼 정말 사랑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정치력을 발휘하는 순간에는 정말 위대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었죠."(지난 25일 김 전 대통령의 막내딸 김혜숙씨, 기자들과 대화 도중)

◇"인자하신 분이었고 직원들을 참 편안하게 잘 대해주셨습니다. 거제에서 올라온 대구로 맑게 끓인 대구 지리탕을 좋아하셨어요."(지난 25일 전 청와대 주방장 이한규씨, 김영삼 전 대통령을 15년 동안 모셨다고 밝히며)

◇"한 번은 왔다 가는 것인데 어떻게 가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지요. 누구보다 열심히 사셨습니다."(지난 22일 천태종 총무원장 춘광스님, 빈소에서 유족을 위로하며)



현충원 묘역에 '봉황알' 돌 7개…지관 황영웅 교수 "吉事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장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25일 오후 커다란 알 모양의 돌덩이 7개가 발견됐다. 김 전 대통령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한자리에 모여 있는 큼직한 돌덩어리 여러 개가 발견돼 묘역을 정리하던 인부들이 놀랐다고 한다"고 전했다.


장례위에 따르면 돌덩어리는 7개 모두 지름 50㎝ 내외 크기다. 이 관계자는 "황영웅 영남대 교수가 이날 마침 묘역에 있었는데, 돌덩이들을 보고 '봉황알 같은 돌덩이들이 발견된 것은 길사(吉事)'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황 교수는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조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이번에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묏자리를 정한 지관(地官)이다.







기타 화보








배너

포토뉴스


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발행인 칼럼

더보기
[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해외 CEO 칼럼 & 인터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