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진압위해 밤새 출동한뒤 온몸 그을린채 연습하기도● 1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안기동. 겨울 농촌의 고요함을 깨고 박진감 넘치는 악기소리와 노랫소리가 앰프를 타고 들려온다. 음악의 진원지는 논밭 사이의 컨테이너 하나. 문을 열자 붉은 제복의 건장한 남자 9명이 전기기타와 키보드, 드럼을 연주하며 ‘아파트’‘여행을 떠나요’ 같은 7080 히트곡들을 끊임없이 쏟아낸다. 이들은 다름아닌 안동소방서 소속 소방관들. 안동의 명물이 돼버린 소방관 밴드 ‘파이어스(Fires)’였다. “학창 시절 한 번쯤은 음악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잖아요. 현실에 쫓기며 접어놓았던 그 꿈에 지금이라도 도전해보자는 뜻에서 파이어스를 만들었어요.”(리더 권순갑 소방장·50·베이스기타) 17일 오후 컨테이너 연습실에 모인 소방관 밴드‘파이어스’멤버들. 제복을 입은 채 달려왔지만 악기를 둘러메자 신이 나는 듯 힘차게‘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이재우기자 파이어스는 2003년 9월 만들어졌다. 돈을 모아 악기와 컨테이너 연습실부터 얻었지만, 멤버들 대부분이 악기를 만져본 적도 없는 ‘생짜’ 초보들이었다. 유일하게 통기타를 칠 줄 알았던 안재민(41) 소방교가 강사 역할을 맡아가며, 소방관 밴드 멤버들은 악보 보는 법부터 독학으로 터득해 나갔다. 격일제 종일 근무라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비번인 날엔 꼭 연습실로 모였다. 차로 1시간 넘게 와야 하는 영양군 소방파출소 염호진(36) 소방사도 연습에 빠지는 일이 없다. 밤새 화재 진압하러 출동했다가 온몸이 그을린 채 연습하러 오는 멤버도 있었다. 그렇게 석 달. 처음으로 한 곡을 완전하게 소화해냈다. ‘나 어떡해’였다. 탄력을 받아 2004년 초 꿈에 그리던 첫 공연도 열었다. 안동 시내 조그만 카페였지만 가족과 직장동료가 200여명이나 참석했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보컬 김주현(40) 소방장은 “너무너무 떨려 공연 전 담배만 뻑뻑 피워댔던 그때를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파이어스의 정신은 ‘봉사(奉仕)’입니다. 삶이 힘겨운 이웃들을 음악으로 위로해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소방관 일 자체가 봉사잖아요. 화재 진압 후의 안도감과 이웃에 음악을 선사한 뒤의 뿌듯함이 묘하게 통한다고 할까요.” (드럼 김규동 소방교·35) ‘집안 식구들’ 앞에서 가진 첫 공연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진짜 도전을 시작했다. 장애인 재활시설 ‘애명복지촌’을 시작으로 불우이웃 위문공연을 나섰다. 2∼3개월에 한 번씩 양로원이나 복지시설을 찾아 다니며 서투르지만 따뜻한 음악을 선물했다. 갈 때마다 주머니들을 털어 간식도 전해준다. 애명복지촌 남태석 사무국장은 “우리 원생들에게는 TV에 나오는 어떤 스타보다도 파이어스 인기가 최고”라며 “힘든 소방관 일을 하면서도 이웃들을 잊지 않는 파어어스가 늘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 올해로 결성 4년째. 이제 제법 노련미를 풍긴다. 지난해 가을에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에 초청돼 단독 공연도 펼쳤다. 안재민 소방교는 “공연에 나가면 관객들의 앙코르 요청에 대비해 노래 한 곡을 미리 준비하는 여유도 생겼다”며 웃었다. 권순갑 소방장은 “툭하면 위문공연 준비합네 앰프를 사야 됩네 하며 월급을 빼돌리고, 쉬는 날이면 연습실로 홀랑 나가 버리는 ‘불량가장’이 됐지만, 불평 없이 도와주는 멤버들의 가족들에게 감사한다”며 “먼 곳으로 발령 나 흩어지지 않고 좀더 오랫동안 어려운 이웃들과 음악을 나누는 게 우리들의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