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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상례문화가 어찌하여 무시당했고, 무엇때문에 보호해야 하는가?

       조선족 상례문화가 어찌하여 무시당했고, 무엇때문에 보호해야 하는가?

                         (제2차 “조선족 상례풍속 학술심포지엄” 특별연설)

                                - 조선족 상례풍속”대표전수인 현룡수



1, 어찌하여 조선족 상례문화가 무시당하였는가?


우리 상례문화가 낙후하였기 때문인가? 아닙니다. 그럼 당년 좌적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인가? 완전히 그런것만도 아닙니다. 주요한 원인은 조선족 상례풍속이 성숙된 후 통일된 조선족 상례문화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은 자고로 자기의 찬란한 상례문화가 있었습니다. 중국 조선족은 백여년 전에 조선반도의 여러 상이한 지역에서 중국에 들어 왔으며 그들이 가지고 들어온 구체적인 상례풍속도 지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글을 아는 사람이 많지 못했던 우리 선인들은 상례지식을 주로 선배들 한테서 구전(口傳)으로 전수 받았으며 그 과정에 오전(誤傳)이 많았고, 지방에 따라 서로의 차이도 점점 크게 되었습니다. 역사적 원인으로 하여 중국의 조선족은 자기의 전통상례문화의 전수와 통일을 결과적으로 완성하지 못하였습니다.


1980년대부터 나라(중국)에서 장례개혁을 시작하면서 회족, 위그르족 등 이슬람 종교를 신앙하는 소수민족들의 장례풍속은 국무원의 “빈장(葬事)관리조례”와 그후의 민정부 보충해석 문건에 의하여 국가적 존중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족 전통장례풍속은 끝내는 나라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연변이 비록 전국 유일한 조선족 자치주였지만, 연변경내의 병원이나 빈의관(장례식장)에서는 특별히 조선족 상가(喪家)를 대상으로 하는 써비스 항목이나 시설을 따로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삼십여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장기간 조선족 전통상례가 필요없게 된 상황에서 조선족 전통상례풍속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점점 사라지게 되었으며 그 직접적인 나쁜 결과로 가정에서 효도가 약화되고 젊은이들의 책임감이 없어지고 전통이 끊어졌으며  경제가 발전한 반면에 민속문화의 퇴화는 놀라울 정도로 가속화 되었습니다.


2, 무엇때문에 조선족상례풍속을 보호해야 하는가?


조선족상례풍속이 특별히 우월해서인가? 아닙니다. 그럼 이 풍속이 없으면 우리 조선족들이 살아갈 수 없어서인가? 그런 것도 아닙니다. 주요한 원인은 조선족상례풍속에는 우리민족의 얼이 배여 있고 우리민족의 뿌리가 묻혀있으며 조선족 상례풍속이야 말로 효도를 발양(發楊)하고 젊은이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유력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민족 가례문화 “冠婚喪祭”를 저술한 《사례편람》이란 책이 있는데, 조선왕조 말기의 학자 이재(李縡기원1680~1746)가 최종 완성한 책입니다. 이책은 도합 여덟권으로 되어 있는데, “冠禮”가 한권으로 되어 있고, “婚禮”가 한권으로 되여 있고 “葬禮”도 한권으로 되여 있는데, “祭禮”는 다섯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선조들은 우리민족 수천년 생존경쟁의 인생관을 “葬禮”와 “祭禮”에서 집중적으로 표현시켰던 것입니다. 우리민족 상례풍속은 자고로 효도를 발양하고 젊은이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며  민족의 전통을 전수(傳受)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민족 상례풍속의 핵심이 바로 “효도”입니다.


우리민족은 자고로 “백가지 선행에서 효도가 첫째(百善孝爲先)”라는 이상을 견지하여 왔습니다. 즉 효도가 한 사람의 현명 여부를 가늠하는 가장 우선적인 표준이었으며, 한 가문의 출세여부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평소에 부모를 학대했던 가문에서도 장례와 제사만은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마음먹고 후하게 치렀으며 그 목적은 자기들도 효자 가문이라는 사회 평판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단 사회로부터 불효 가문이라는 평판을 받게 되면 그 가문 자손들의 출세의 길은 영원히 막혀버리기 때문이였죠.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인재등용을 평가할 때 그사람의 자격과 재능만 중시하고 인품은 상관하지 않으며  “효도”는 근본 인재표준에 들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격증을 따고 재능을 높이는 것만 중시하고, 부모에게 효도하고, 인품을 높일 필요는 근본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조선족 장례풍속이 이렇게 오래동안 사람들의 관심밖에 버려질 수 있었고,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근본원인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효도가 약화됨으로써 지금 우리의 미풍양속이 얼마나 심하게 퇴화되고 있는지 말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늙으신 부모와 한집에서 지내는 가정이 거의 없고, 늙은이들에겐 진짜 혼자서 살다가 혼자서 죽어야 하는 고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독사, 임자없는 죽엄, 죽은 후 며칠후 발견 등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데 이런 현상은 “효도의 재난”이요, “인도주의 재난”이며, 우리민족의 망신입니다. 부모가 사망하여 당일 장례가 보편적이고, 장례도 우리식이 아닌 남의 식으로 어설프게 치루어야 하며, 수십년 동안 자식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온 부모들이 사망하여 결국 쓰레기처럼 처리되어 버립니다. 화장을 실행하여 장례가 간단하여 진것은 시대의 진보라고 할수 있겠지만, 시체만 처리하고 장례는 지내지 않으며, 부모를 양로원에 맡겨 놓고, 사망해도 자기들은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오지도 않는, 상주로서의 최저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이런 비인륜적인 행위는 그 어느 민족에서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런행위는 반드시 사회의 질책을 받아야 하지만 지금 이런 행위를 질책할 사람이 근본적으로 없고 그런 사회기제도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민족의 퇴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자기 부모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존중할 수 있고, 남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 용납될 수 있으며, 사회에 용납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잘 살수 있겠습니까?


3,어떻게 우리민족의 품성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겠는가?


이 문제의 해답은 간단합니다. 한마디로 우선 효도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효도를 중시하고 회복시켜야만 가문의 화목을 확보할 수 있고, 젊은이들의 가문에 대한 책임을 담보할 수 있으며, 민족의 우수한 전통을 계승할 수 있고, 우리민족의 품성을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양로보험, 의료보험 등 보험들이 많은데, 이런 보험들은 노인들의 양로에 필요한 기본적인 비용을 해결할수 있지만, 노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줄 수는 없습니다. 2500여년 전에 공자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효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은 부양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기는데, 기실 우리는 개나 말도 기르고 있다. 부모를 존경하지 않고 부양만 한다면 개나 말을 기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今之孝者,是谓能养。至于犬马,皆能有养。不敬,何以别乎?)》그럼 어떻게 하면 효도를 회복시킬수 있겠습니까? 우선 우리민족 효도에서 가장 심하게 망가진 상례풍속부터 다시 살리고 봅시다. 자고로 우리민족 상례풍속은 효도를 강조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의 하나였습니다. 우리민족 상례풍속을 살린다는 것은 그 많은 번잡한 규례들을 모두 회복한다는 것이 아니라, 사망한 부모를 神처럼 높이 공경하는 그 핵심 관념을 살린다는 것입니다. 사망한 부모를 공경하는 사회기풍이 형성되면, 자연히 살아 계시는 부모를 존중하는 사회기풍도 형성될것이요, 우리민족의 여러가지 우수한 전통도 다시 계승될 수 있을것입니다.


2009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정부와 길림성 정부에서는 “조선족 상례풍속”을 각기 주급(州級)과 성급(省級)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저를 대표적인 전수인(傳受人)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민족 상례풍속이 초보적으로 나라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런데 “조선족 상례풍속”은 조선족 천가만호(千家萬戶)와 상관되고, 조선족 개개 구성원들과 상관되는 큰 일이므로 이 무형문화재 보호가 결코 대표 전수인 한사람의 힘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조선족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분들, 특히 조선족 이름으로 직위를 얻은 분들, 학위를 얻은 분들, 재부를 얻은 분들, 어떤 이익을 얻은 분들, 우리 힘을 합칩시다 ! 끝까지 청취하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


연변조선족례의연구회 현용수 발표  2015-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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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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