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몇발짝 앞서 같구려" 작별 입맞춤 김종필 '눈물의 思婦曲'♣ ♣
“수다한 물음에도 소이부답(笑而不答:웃음을 뛸 뿐 답하지 않음)하던자, 내조의 덕을 베풀어 준 영세반려(永世伴侶:끝없는 세상의 반려)와 함께 이곳에 누웠노라.”
여든 아홉 노정객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아내 박영옥 여사를 먼저 보내면서 손수 지은 비문이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21일 마지막 가는 부인의 옆을 지키며 숨을 거둘 때까지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한을 내려놓듯 박영옥 여사의 숨이 넘어가자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65년간 반려자로서 살아온 아내와 마지막 입맞춤으로 작별을 고했다. 22일에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는 “내가 이렇다 할 보답도 못했어. 나를 남겨 놓고 먼저 세상을 뜨니 허망하기 짝이 없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충혈된 눈으로 조문객을 맞은 김 전 총리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만나는 사람마다 전했다.
이완구 총리에게는 “마누라 하고 같은 자리에 눕고 싶어 국립묘지 선택을 안했다”며 “먼저 저 사람이 가고 그 다음에 언제 갈지…곧 갈 거예요. (제가) 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에게는 “65년 같이 살면서 한 번도 큰 병 앓은 일이 없었는데 아주 못 된 병에 걸려 가지고. 그런데 아주 편안하게 숨을 거뒀어요. (나보다) 몇 발짝 앞서서 간 거죠”라고 애통함을 전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생전 “딴 여자한테 눈길 한번 준 적 없었다”고 말할 만큼 생전 금슬이 좋았다.두 사람은 1·4후퇴 직후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결혼식을 올린 후 고 박영옥 여사는 최전방에 투입된 남편이 걱정돼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강원도 춘천까지 찾아갔던 일화도 유명하다. 고인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셋째형 박상희씨의 딸로, 박근혜 대통령과 사촌지간이다. 경북 선산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구미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51년 2월 박 전 대통령의 소개로 김 전 총리를 만나 결혼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결혼 60년이 지난 2011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1951년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딸인 박영옥 여사와 만나게 된 사연을 밝혔다. 김종필 전 총리는 "당시 박정희 소령이 국수를 좋아했다. 1950년 6·25 전쟁 직전의 어느 날 박정희 소령의 관사에서 국수를 먹는데 못 보던 여자가 왔다갔다"며 박영옥 여사와 처음 만난 순간을 떠올렸다. 이후 전쟁이 발발했고, 말라리아를 앓던 박영옥 여사에게 김종필 전 총리가 의사를 구해주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박영옥 여사가 비스킷, 빵 등 미국 야전식을 대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돈독해졌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에게 "(박영옥 여사를) 데리고 갈 생각이 없는가. 지내보긴 뭘 지내보나. 이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지 않냐"며 결혼을 부추겼다. 김종필 전 총리는 "연락이 끊겨 죽은 줄 알았다. 확인하러 왔다"며 박영옥 여사가 서울 육군본부로 찾아오자 이에 감동해 결혼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김 전 총리는 22일 조문객들을 만나서도 “난 마누라하고 같은 자리에 누어야겠다 싶어서 국립묘지 선택은 안했다”며 “집사람하고 같이 눕고 싶은데 아직 부부가 같이 현충원에 가는 건 대통령이나 그렇다고 한다. 국립묘지에 가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또 “난 외로워서 일찍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박 여사의 임종에 임박해 의료진 등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뒤 부인과 마지막 입맞춤을 나눴다. 부인의 손을 꼭 잡으며 “나도 머지않아 가야 하니까 외로워 말고 편히 쉬라”고 작별인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64년 전 부인에게 선물했던 결혼반지를 목걸이에 매달아 떠나는 부인의 목에 걸어주며 흐느꼈다.김 전 총리의 마지막 말은 "여보, 멀지 않은 장래에 갈 테니까 외로워 말고 잘 쉬어요"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