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신중년 부부들은 자식들과 '독립적인 생활'을 선호한다. 노후의 삶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되, 자식들의 성공을 위해 재산을 물려주는 등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자녀에 대한 '독립선언'인 셈이다. 경남 창원에서 정육점을 하는 정모(65)씨는 최근 아들로부터 "전세금이 너무 올라 대출을 받았는데도 힘들다"며 5000만원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정씨는 고민 끝에 다음 날 아들의 부탁을 거절했다. 정씨는 "이미 결혼할 때 전세금 1억원을 준 데다, 노후를 위해 딱히 모아 놓은 돈도 많지 않다"며 "우리 부부가 적어도 15년, 길게는 20년은 살아야 하는데, 이 나이에 대출까지 받아가며 자식을 도울 순 없다"고 말했다. 신중년은 과거 노인 세대와 비교할 때 자녀에게 냉정해졌다. 젊은 시절엔 자식을 위해 헌신했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자신의 삶과 남은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주기는 싫다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65세 이상 고령층을 상대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재산을 이미 전부 물려줬다는 응답이 1981년 78.9%에서 2012년 9.3%로 급감했다.
과거엔 살던 집은 물려주겠다는 게 노년층의 인생 정리 공식인데, 신중년에게 이런 공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수도권의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택 증여 설문 조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집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이 2010년 21.1%에서 2014년 34%로 늘었다. 김명현 주택금융연구소장은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에 가입하면 국민연금처럼 돈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다는 정보가 신중년 사이에 퍼지면서, 주택을 증여하지 않겠다는 신중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노후 생활도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감당하겠다는 생각이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장남과 같이 사는 60세 이상 고령층 비율이 1981년 51.6%에서 지난해 14.6%로 급감했다. 65세 이상 고령층 가운데 '부모가 자신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1998년 7.7%에서 지난해 23.8%로 급증했다. 반면 '자녀가 책임져야 한다'는 응답은 90%에서 34.1%로 줄었다.
자의(自意)든, 타의(他意)든 자식으로부터 '독립선언'을 한 상황이 되고 보니, '배우자'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가 됐다. 세상에 믿을 곳이라곤 배우자밖에 없게 됐고, 자연스레 제2의 신혼이 펼쳐지는 것이다. 통계청의 '2013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신중년 가운데 본인이 건강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24.1%지만, 배우자가 없으면 이 수치는 11.8%로 떨어진다. 자녀와의 관계도 배우자가 있는 신중년은 69.2%가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배우자가 없으면 이 비율이 58.6%로 내려간다.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신중년들은 예전 노인보다 정신과 체력이 모두 강해졌다"며 "즐길거리가 있으니 평생 모은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 자신을 위해서 쓰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