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무덤에서 여러 구의 인골이 발굴됐을 때 고고학자들의 첫째 임무는 그들의 매장순서와 가족관계를 밝히는 일이다. 2004년 발굴된 전북 완주 은하리의 백제 돌방무덤(석실분·石室墳·서기 6세기)에 묻힌 인골 4구〈그림〉도 학계의 큰 관심을 끌었다. 같은 돌방에 묻혔지만, 묻힌 시기가 약간씩만 차이를 보이는 추가장(追加葬·여러 시신을 사망 순서대로 묻는 장례) 인골들이었다. 이준정 서울대교수(고고학)는 17일 “당초 예상처럼 ‘부모와 아들·며느리’가 아니라 ‘남매와 그 배우자’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물론 DNA 분석 같은 최첨단 기법을 사용, 추가 조사를 진행한 덕분이다. 2004년, 발굴단은 체질인류학적 조사를 통해 남녀 각 2명씩임을 밝힌 뒤 “부모와 아들 부부 무덤”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와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등으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은 올해 DNA 분석 등 인골 종합조사를 다시 벌였다. 치아 마모도로 볼 때 1호(남자)는 25~35세, 4호(남자)는 30~40세, 2호(여자)는 30~40세, 3호(여자)는 40~50세였다. 발굴 결과로 볼 때 묻힌 순서는 4호→3호→2호였다. 1호는 2호보다 앞섰지만, 다른 인골과의 시기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조사단은 ‘미토콘드리아 DNA’와 ‘핵 DNA’를 뽑아내려고 했다. 전자는 모계 혈통이, 후자는 부계 혈통이 같으면 일치한다. ‘핵 DNA’는 그러나 극히 미량으로 존재해 추출이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도 ‘미토콘드리아 DNA’ 추출만 성공했다. 조사 결과, 2호와 4호만이 모계 쪽으로 혈연관계였다. 1호와 3호는 모계 쪽으로는 다른 인골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2호와 4호의 관계는 대략 어머니와 아들, 외삼촌(이모)과 조카, 그리고 남매간이다. 만약 어머니와 아들이라면? 가장 먼저 묻힌 4호(아들)의 나이가 30~40세인데, 가장 나중에 묻힌 2호(어머니)가 30~40세에 불과할 리가 없다. ◈외삼촌(혹은 이모)과 조카? 아무리 모계 혈족간 유대가 강했어도 부모가 아니라 외삼촌(이모) 무덤에 조카를 묻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 교수는 “인골 2호와 4호는 남매이며, 다른 남녀는 이들의 배우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같은 무덤에 남녀 2명씩 있을 경우, 부모와 자식부부 무덤이라고 생각하던 ‘통념’이 뒤집히는 순간이다. 그는 그러나 “핵 DNA 분석을 다시 시도했을 때 부계가 모두 같은 것으로 나온다면 4명 모두 남매”라고 했다. ‘처첩’이 3명이었기에 생모가 같은 2호와 4호만 모계가 같은 것으로 나오는 것. 그러나 ‘함정’은 여전히 남는다. 부계를 증명하는 ‘핵 DNA’ 결과가 모두 달라도, 4명 모두 ‘남매’였을 수 있다. 서구에서 중세 이후 가족 관계가 분명한 묘에서 출토한 유골을 ‘핵 DNA’로 분석한 결과 ‘사회적’으로는 분명 부자관계인데 사실은 ‘아버지’가 아닌 경우도 20%쯤 된다. 어머니의 불륜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