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처럼 생명과 직결되는 병에 걸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치료법이 수술이다. 완치가 목적이라면 몸 안의 암 조직 등을 물리적으로 제거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가 고령이라면 수술을 선뜻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젊은 사람도 두려워하는 전신마취를 잘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우선 앞서며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합병증에 대해서도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은 수술여부를 질환이나 장기 위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마취의 위험이 높고 수술에 의한 합병증이 잦은 노인환자에게 예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미리 제공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 수술결정에 대한 환자 혹은 보호자의 심리적 부담감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광일 교수는 “아주 고령이라도 수술 후 회복이 잘 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수술로 질환 자체는 치료가 잘 됐더라도 전신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이를 기준으로 두고 고령환자의 수술 후 예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고령환자의 수술 후 예후를 예측할 수 있는 도구가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연구팀에 의해 개발됐다. 수술을 앞두고 있는 노인을 대상으로 '노인포괄평가'라는 다면적 도구를 가지고 분석해 점수를 매겼더니 이 점수가 높을수록 수술 후 사망 및 합병증이 발생할 확률 역시 증가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이제까지는 고령환자의 수술 후 예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번 연구를 통해 '일상생활의 독립성', '혈액검사(알부민) 수치',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법'이 수술 후 사망 및 합병증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분석됐다.
분당서울대병원 노인병내과 김선욱 전공의·김광일 교수팀과 외과 한호성 교수팀은 2011년 10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외과에서 수술 받은 65세 이상 노인 275명을 대상으로 노인포괄평가를 시행하고 수술 후 예후를 분석한 결과를 이 같이 발표했다. 연구팀은 수술이 예정된 노인의 건강상태를 다면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수술 전 '노인포괄평가'를 실시했다. 수술 전 노인 포괄평가는 동반질환 평가, 일상생활 능력평가, 정신기능 평가, 영양상태 평가 등 총 9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이 평가항목에 따라 '고위험군(5점 이상)'으로 분류된 노인은 '저위험군(0~4점)'에 속한 노인에 비해 수술 후 1년 내 사망할 확률이 9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고위험군은 집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또 다시 입원할 가능성 역시 4.4배 증가했으며 수술 후 감염이나 섬망이 발생하거나 중환자실 치료를 요하는 빈도가 1.7배 높았다. 총입원기간과 수술 후 입원 기간 역시 고위험군은 14일/9일로 저위험군 9일/6일 보다 1.5배 더 길었다. 김광일 교수는 “수술 전 노인포괄평가 도구의 개발로 인해 수술 전후 면밀한 감시가 필요한 노인들을 객관적으로 선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며 “또 거꾸로 단순히 나이가 많아서 수술을 받지 못했던 노인들에게도 이 평가도구가 수술을 통해 질환을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10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전체 수술 관련 진료비의 40% 가량은 노인에게 쓰이고 있다. 게다가 수술 후 오히려 건강이 악화된 노인의 경우에는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하거나 보호자가 생업을 포기한 채 간병을 떠안는 일이 많아 경제적인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김 교수는 “노인포괄평가는 일반적으로 건강을 가늠하는 지표로 겉으로 드러난 의학적 문제뿐만 아니라 세면/식사/이동 등 기본적인 일상생활이 스스로 가능한지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치매/우울 등 정신건강 평가, 영양상태에 대한 평가를 다방면에서 시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시스템이 잘 정착한다면 예후 예측의 정확도를 높여서 노인 삶의 질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가족 및 사회의 경제적 부담도 경감될 것으로 판단하며 이를 목표로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는 여러 진료과의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영양사, 약사들과 함께 팀으로 접근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