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네 나는 가 이 세상을 이별하고, 나는 가네 나는 가 나무아미타불, 나는 가네 나는 가 정든 산천을 이별하고, 나는 가네 나는 가 나무아미타불 … ” 4월6일 오전.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길에는 구성진 ‘열반가’가 울려 퍼졌다.
서울 전등사 주지 동명스님이 은사 해안스님의 ‘생전 장례식’을 53년 만에 재현하며 상여에서 열반가를 부른 것이다. 죽은 이가 타야하는 상여를 산 사람이 탔으니 희유한 일임에 틀림없다. 이날 오전 10시. 부안 내소사 지장암 서래선원 앞마당에는 동명스님이 재현하는 ‘생전 장례식’에 동참하기 위해 각지에서 찾아온 스님과 불자들이 이어졌다.
나이 지긋한 선운사 원로스님들은 물론 동명스님과 인연 있는 노스님들도 먼 길 가까운 길 가리지 않고 찾아왔다. 선운사 주지 법만스님과 중앙종회의원 도정스님도 미리 와서 행사를 점검했다. 하얀 꽃으로 장엄한 상여를 직접 메고 이동할 10여명의 선운사 대중도 도착했다. 내소사 선원장 철산스님과 내소사 주지 진학스님 등 문도들도 자리를 같이했다. 이날 생전 장례식은 오전 10시6분 시작됐다.
반야심경을 비롯한 간단한 의식과 함께 동명스님이 지장암 서래선원 법당에서 부처님과 은사 스님 진영에 예를 올린 후 걸어 내려와 꽃상여 안으로 들어갔다. 조계종 어장 동주스님, 포천 동화사 주지 화암스님, 그리고 절친한 도반인 현각스님(원주 성불원 주지)이 꽃상여를 인례(引例)하고, 700여명의 사부대중이 상여의 뒤를 따랐다. 지용현 광주전남불교신도회장과 전등회원 등 재가불자도 다수 참석했다.
지장암 앞마당을 출발한 상여는 일주문을 거쳐 전나무 숲길을 거슬러 내소사 부도전으로 향했다. 53년 전 동명스님의 은사 해안스님이 회갑을 맞아 스스로 마련해 장례행렬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상여가 지나는 길 또한 53년 전과 똑 같이 했다. 때마침 휴일을 맞아 내소사를 찾은 참배객과 관광객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상여 행렬을 지켜봤다. 일주문을 지난 후 동명스님은 상여 안에서 열반가를 불렀다. 무상(無常)의 가르침을 담은 열반가는 세속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정진했던 해안스님의 마음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다. 53년 전 은사의 열반가를 부르는 동명스님의 목소리가 간간히 떨렸다.
때마침 활짝 핀 벚꽃 사이를 지난 꽃상여는 오전 10시56분 내소사 부도전 앞에 도착했다. 드디어 상여 문이 열리고 동명스님이 밖으로 나왔다. 반세기 전 은사의 장례행렬을 재현한 동명스님은 남다른 감회에 잠기는 듯 했다. 곧바로 부도전으로 자리를 옮긴 대중들은 다례재를 거행하면서, 생전 장례식을 통해 후학들에게 무상의 가르침을 전하며 열심히 수행 정진할 것을 당부한 해안스님의 뜻을 마음에 새겼다.
해안스님 40주기 다례재가 끝난 후 동명스님은 “지금 비록 은사스님은 가시고 없으시지만, 53년 전 스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을 여러 스님들과 함께 걸으며, 삶이란 이런 것이 구나를 느끼게 됐다”면서 “해안스님께서는 장사하는 사람이든, 농사짓는 사람이든, 스님이든, 누구라도 1주일만 수행 정진하면 도(道)를 깨달을 수 있다고 하셨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어 “선원사 대중과 내소사 스님들을 비롯해 각처에서 참석해 준 스님과 불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날 동명스님이 재현한 해안스님의 생전장례식은 은사의 발자취와 가르침을 온전히 계승하여 후대에 물려주기 위한 일환이었다. 정법을 통한 인간혁명을 주창하며 오직 수행의 삶을 걸었던 해안스님의 가르침이 생전장례식을 통해 다시 한 번 세상을 일깨웠다. “… 나는 가네 나는 가 부귀공명을 다 버리고, 나는 가네 나는 가 나무아미타불, 백년삼만육천일을 우리 인생이 산다고 해도, 허망하기 짝이 없네 나무아미타불, 가진 권세를 다 누리고 무소불위 호령하던 사람들도 항복하네 나무아미타불 …”
[불교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