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과일보에 따르면 산시성 정부는 자오청현에 화궈펑의 묘지를 조성해 오는 8월 20일 화궈펑의 사망 3주기를 맞아 유골 안장식 및 동상 제막식을 거행한다. 1억위안(약 167억원)의 예산이 투입된 화궈펑의 묘지는 워낙 규모가 크고 화려해 `화릉"(華陵)으로 불리고 있다고 빈과일보는 전했다. 빈과일보는 기사 이외에 별도의 사설을 통해 "화릉은 `화궈펑의 능"이라는 뜻과 함께 `호화.사치스러운 묘지"로 비꼬는 의미도 있다"고 비판했다. 빈과일보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과 덩샤오핑(鄧小平) 사이의 과도기적 지도자에 불과한 화궈펑의 묘를 고대 황제처럼 사치스럽게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각을 세웠다. 마오쩌둥이 잠들어 있는 베이징(北京)의 `마오쩌둥 기념당" 전체의 면적(5만7천㎡)도 화궈펑의 묘지 보다는 작다고 빈과일보는 지적했다. 게다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중국의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덩샤오핑은 아예 유언에 따라 유해가 중국과 대만 사이의 바다에 뿌려져 묘지도 남기지 않았다. 산시성 정부는 중앙정부의 승인을 얻어 지난해 4월부터 화궈펑 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궈펑은 1976년 마오쩌둥의 사후 그의 후계자로 잠시 중국을 통치했으나 덩샤오핑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해 1981년 권좌에서 물러났다. 이후 화궈펑은 2008년 8월 20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화궈펑의 유해는 같은해 8월 31일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혁명공묘에서 화장됐으며, 그의 유골은 현재 베이징에 임시 안치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지난 2월 16일이 화궈펑(華國峰) 탄생 90주년이었다며 화궈펑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등 `화궈펑 띄우기"에 나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인민일보는 2월 19일자 신문에서 화궈펑이 70년에 달하는 세월을 중국 혁명에 몸바쳤으며 공산당의 숭고한 이상과 위대한 사업을 펼치는데 불철주야 노력했다고 치켜세웠다. 아울러 화궈펑은 공산당과 인민에게 무한한 열정을 갖고 중국의 혁명, 건설, 개혁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인민일보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항일투쟁 시기,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후난성(湖南省)에서의 활동, 문화대혁명 기간의 고행, "문화혁명 4인방" 척결 기간으로 나눠 화궈펑의 일대기를 조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