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고운 한복을 입고 계시네요.” “응. 지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통혼례를 하고 계시는 거야.”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 하는 것보다 멋지고 아름다워 보이는걸요.” “옛날에는 다들 저렇게 결혼식을 올렸지. 조상들의 멋과 정성이 보이니?” 8월 22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필동 2가 남산골 한옥마을 부마도위 박영효 가옥. 태어나서 처음 보는 전통혼례식을 본다는 초등학생 김우주군(12)이 신기하다는 투로 말했다. 김군이 보고 있는 전통혼례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마련하고 있는 ‘남산골 상설 전통혼례’다. 남산골 한옥마을에선 올해 4월부터 이 같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 혼례를 치르지 못한 부부나, 결혼 50주년을 맞이해 금혼식을 치르고 싶은 부부 등 특별한 사연을 가진 서울시민들이 대상이다. 남산골 한옥마을 팀장인 전병선씨는 “경제적, 개인적인 사정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어르신 부부나 결혼기념을 위해 추억을 다시 되돌아보려는 어르신들의 신청을 받아 10월까지 진행한다”면서 “참여하는 어르신 부부에게 추억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구경하고 지켜보는 시민들이나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우리조상들의 전통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날 전통혼례에선 한학자이자 서예가인 김기진씨가 집례를 맡았다. 음악은실내악 ‘마루’팀이 전통혼례에 맞게 해금, 대금, 가야금, 아쟁, 장구 등 전통악기로 연주했다. 또 한옥마을 관계자들이 혼례식 준비를 담당했다. 앞마당에 부귀영화를 상징하는 모란병풍을 놓고, 상위엔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대추, 밤, 팥, 곶감 등의 음식모형물을 놓았다. |
신랑과 신부가 혼례장에 마주 서자, 혼례를 돕는 수모들이 상위에 초를 켜고, 신랑과 신부의 손을 씻겨줬다. 손을 씻은 신랑과 신부는 한 번씩 서로 절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신랑과 신부는 수모들이 따른 술잔을 받아 마셨다. 김기진 집례는 “혼례에 있어 첫술은 매우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부모의 인연으로 맺어진 혼례가 많은 옛날에는 신부의 얼굴을 처음 볼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마지막으로 신랑과 신부는 일어나 하객들을 향해 인사했다. 인사는 부부가 됐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자, 함께 한 하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다. 인사를 마친 부부는 집례사의 덕담과 함께 전통혼례를 마쳤다. |
TV에서만 전통혼례를 봤다는 박지은씨(38·여)는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세대여서 전통혼례는 TV에서만 봤는데 이렇게 실제로 보니 신기하다”면서 “특히 혼례에 쓰이는 물건이나 의식에 여러 가지 의미들이 담겨있다는 것은 이번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전통혼례를 지켜보던 주인하씨(44·여)는 “아기자기한 혼례 장식품들과 혼례의상이 정말 멋스러웠다”면서 “우리조상들은 혼례에도 많은 정성과 의미를 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통혼례를 한 어르신 부부가 부러웠다”고 말했다. 들어보기만 했던 전통혼례를 직접 볼 수 있어 좋았다는 이세라양(11)은 “하얀 드레스와 검은 턱시도가 아닌 우리나라 전통 한복과 음식들을 놓고 결혼을 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전통혼례처럼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그는 이어 “전통혼례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로 꼽힐 정도로 전통 있는 의식”이라며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전통을 잊지 않고 소중히 생각하고 기억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전통혼례를 치룬 부부는 이날 어르신부부를 포함해 총 17쌍이라고 한다. 남산골 한옥마을의 전통혼례는 결혼식을 올리기 힘든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시민들에게는 우리의 전통혼례를 알려주는 기회가 될 것이다. [공감코리아 정책/자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