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월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진행되던 제럴드 포드 제38대 미국 대통령의 국장(國葬·state funeral)에서 폭소가 터졌다. 전직 대통령인 아버지 부시가 조사(弔辭)에서 골프애호가 포드가 생전에 즐겨 하던 농담을 인용하면서다. "걸핏하면 골프공을 구경꾼들에게 날리던 포드가 "요즘 공에 맞는 사람이 준 걸 보니 내 골프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장례식은 장엄하되 비극적 최후가 아니라면 그리 어둡지 않다. 미국은 전·현직 대통령이 타계하면 국장이 원칙이지만 유족이 원치 않으면 유족 뜻에 따른다. 루스벨트와 닉슨은 그래서 가족장을 했다. 국장도 운구 절차와 코스, 안치 장소 등만 정해져 있고 자세한 절차 역시 유족이 정하게 한다. 암살당한 젊은 대통령 케네디의 국장은 처음 TV로 전국에 생중계돼 국민적 애도를 받았다. 인기가 높았던 레이건의 국장 땐 계획서가 300쪽이 넘었다. 우리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은 그 대상을 전·현직 대통령과 "국가·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현직 대통령은 국장,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 부인·국회의장·국무총리는 국민장이 관례다. 정부 수립 후 국장은 재임 중 서거한 박정희 대통령이 유일하다. 국민장은 2006년 최규하 전 대통령까지 12차례 치러졌다. 국장은 9일 이내 치러야 하고 영결식 날 관공서가 휴무한다. 국민장은 7일 이내 치른다는 규정만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를 29일 국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때는 국무총리를 장의위원장으로 하고 3부 요인과 정당 대표, 친지, 저명인사 55명을 고문으로 위촉했다. 국회 부의장과 선임 대법관, 감사원장, 부총리 등 부위원장 8명에 위원 616명까지 모두 680명으로 장의위원회가 구성됐다. 정부와 노 전 대통령 유족 측이 장의위원회 구성을 협의하고 있는데 1000명을 넘어 최대 규모가 될 것 같다고 한다. 전·현직 대통령 장례식은 역사적 평가의 첫 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일체감과 애국심을 재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포드의 국장을 지켜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썼다. "미국의 상처를 보듬은 전직 대통령에게 정치적 동지와 적이 함께 경의를 표하는 화합의 장이었다. 이런 모습이 대를 이어 정치적 규범으로 정착된 나라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노무현 전 대통령 국민장도 그런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 [출처] 조선일보 |
▶삶과 죽음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내게는 죽기 전에 꼭 쓰고 죽으리라 다짐한 책이 한 권 있다. 그냥 "생명"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아무래도 상당히 두꺼운 책이 될 성싶다. 생물학의 관점뿐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물론 심지어는 예술의 눈으로 바라본 생명의 모습을 그리려니 자연스레 두툼해질 것 같다. 여러 해 전 미국에 간 길에 만난 예전 대학원 친구에게 이런 나의 꿈을 밝혔더니 대번에 "그럼 못 쓰고 죽겠군" 하는 것이었다. 죽기 전에 뭔가 하겠다던 사람치고 제대로 끝낸 사람을 본 적이 없다며 지금 당장 시작하라고 충고했다.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때부터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쓰는 과정에서 나는 생명의 가장 보편적인 특성이 뜻밖에도 죽음이라는 걸 깨달았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행성에 태어나는 모든 생명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생명의 본질은 다름 아닌 죽음이다. 나는 이를 "생명의 한계성"이라고 적어두었다. 하지만 생명의 한계성은 어디까지나 생명체의 관점에서 바라본 생명의 속성이다. 우리는 앞마당의 닭들이 싸움도 하고 짝짓기도 하고 알을 낳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닭"이라는 생명의 주체가 바로 그 닭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에 따르면 닭은 "달걀이 더 많은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달걀은 다름 아닌 유전자를 의미한다. 달걀 속의 유전자가 닭을 만들어 달걀을 생산하다 여의치 않아지면 그 닭을 죽여버리고 또 다른 닭을 만들어 달걀 생산을 계속하는 게 닭의 삶이라는 것이다. 닭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한동안 살다가 결국 한 줌 흙으로 돌아가지만, 그 닭을 만들어낸 유전자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닭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생명체의 삶은 유한하지만 유전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생명은 "영속성"을 지닌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유전자는 생명의 끈을 놓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홀연 자신의 생명 끈을 놓아버렸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사라져도 그의 유전자는 남는다. 자손들의 몸을 통해 남는 유전자뿐 아니라 그의 이상이 담긴 "노무현표" 문화유전자(meme)도 세대를 거듭하며 퍼져갈 것이다. 혁명가로서 그가 뿌린 문화유전자의 힘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할지 모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출처]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