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장례문화연수기 [대전보건대 이병애] ◈"이처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되는 감동서비스를 기본으로 갖추고 창의적으로 계속 물질적 또는 정신적 질의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감동서비스를 기억하는 고객은 꼭 다시 그 기업을 찾을 것입니다." ------------------------------------------------------------------------- |
■드디어 고대하던 일본장례문화견학을 12월 14일~17일까지 3박 4일동안 다녀왔습니다. 여행기간 동안 겪었던 일들과 느낌은 너무나 많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들만 적어봅니다. 입학하면서부터 교수님과 선배님들로부터 매년마다 다녀오신 일본견학이 얼마나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셨는지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들어 왔었고 꼭 가볼만한 좋은 경험이라며 추천해주셨기 때문에 어쩌면 오랫동안 기다려 온 여행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일정이 잡히자마자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고 "내가 일본여행을 가서 얻어올 것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하며 출발당일인 14일 일요일, 새벽에 밤잠까지 설쳐가며 서둘러 대전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도착해보니 여행기간동안 함께할 김명지 가이드분, 여러 학교의 교수님들, 장례식장 사장님, 졸업하신 대선배님들, 2학년 선배님, 그리고 우리 장례지도과 만학도 분들과 친구들까지 해서 꼭 29명이었습니다. 각자 사회적 위치와 나이는 다르지만 오로지 일본 장례문화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전국에서 하나로 뭉쳐서 함께 여행한다는 생각에 동질감이랄까? 여튼 흐믓한 맘으로 일본 가고시마로 향했습니다. |
그래서 과거에는 장례식을 불교식으로 절에서 많이 치뤘는데 현재에는 다양한 장례식 형태에 따라 호텔, 가정집, 전문장례식장 등으로 장소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짧게 기념비를 둘러보고 나서 시로야마 공원에 갔는데 대나무와 아름드리 나무가 무리지어 너무나도 빽빽히 자리잡고 있어서 밀림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가고시마 시내는 지진과 활화산 때문에 고층건물보다는 낮은 건물이 많았고 산중턱에는 메이지유신때 정부군에 패배한 타카모리가 할복하여 스스로 자결했다는 시로야마 동굴이 스산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
일본식 제단은 수업시간에 자주 접했던 것이지만 직접 제단에 쓰여 지는 제물과 절차를 대표님의 친절한 설명으로 듣고 직접 보니 쉽게 이해가 됐습니다. 방을 나와 밖으로 나가는데 눈에 띄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현관에 가득히 걸려 있는 우산들과 휠체어였습니다. 비도 오지 않는 화창한 날씨였는데 우산이 왜 있나 했더니 비나 눈이 올 때, 장애가 있거나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유가족이 조문시 불편할 수 있는 작은 부분까지 생각해 배려하다니 보기 좋았습니다. 현관 밖을 나가니 카고시마MBC 방송국에서 우리일행에 대해 취재를 나와서 우리가 묘지회사 견학하는 모습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
하지만 높이는 2m이하만 가능하고 기업이 아닌 개인만이 구입가능하도록 법적으로 규제화하여 자칫 사재기가 되지 않도록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봉안묘들 중간에는 유가족이 편히 쉴 수 있게 나무벤치와 탁자가 육각정자안에 놓여져 있어 마치 공원과 같은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수도시설과 청소도구함이 있었는데 유가족이 대리석으로 된 봉안묘 청소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 길거리에 담배꽁초 하다 보기 힘들만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항상 깨끗하고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일본문화에 꼭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필요시마다 언제나 가져가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자판기 옆에 구비하여 사용토록 하고 있었고 이는 유가족들이 고인의 봉안묘를 직접 닦고 깨끗이 관리함으로써 애틋한 맘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묘지회사 측면에서는 관리의 수고스러움을 더는 이로운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늘에는 어렴풋이 가느다란 실이 줄지어 매달려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이는 새들의 출입을 방지하고 새의 분비물을 막기 위한 것으로 이또한 청결한 묘지회사 관리를 위한 한가지 수단이었습니다. 게다가 조경관리도 너무 잘 다듬어져 있어서 깨끗하고 단정한 실외봉안시설을 완성하고 있었습니다. |
1개실당 5평정도 넓이로 안에는 200명분의 개인정보자료가 들어 있는데 모두 6개실이니 총 1,200기를 모실 수 있었고 평소에는 유리문으로 닫혀 있다가 제단 오른쪽 카드리더기에 참배카드를 넣고 고인에 대한 정보 를 선택하여 불러오면 유리문이 열리면서 제단이 드러나고 고인에 해당하는 비문이 나오면서 비석앞에는 손바닥만한 분수대에서 물줄기가 샘솟아 유가족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
이런 IT를 접목한 실내봉안시설의 경우 아직 우리나라에는 선보인 적이 없는 신개념의 시설이기 때문에 한국화하여 벤치마킹한다면 훌륭한 사업아이템이 될 정도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가족유골함에는 집안마다 다양한 문장모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전통이 깊고 뼈대있는 가문과 같은 경우에도 가문을 대표할 수 있는 독특한 모양의 문장을 디자인하여 새겨드리는 것도 서비스의 일환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내봉안당에서 나와서 다시 응접실로 들어가서 간단하게 질의응답시간을 갖으면서 묘지회사의 이모저모에 대해 듣고, 아쉽지만 다음 일정때문에 나와야 했는데 엉겹결에 일본 기자의 인터뷰에 응하면서 간단하게 이번 견학을 하면서 느꼈던 점에 대해서 몇마디 나눴습니다. 그런데 준비하지 못했던 내용을 갑자기 표현하려고 하다보니 얘기할 내용은 머릿속에서 맴도는데 입밖으로 나오질 않아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 인터뷰도 해보고 남은 여행기간동안 더 좋은 일이 많이 생길것만 같은 예감이 들어서 하루를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
책임자의 말씀으로 일본은 거의 모든이가 화장을 하는데 지난 10년전부터 지속적으로 화장건수가 증가하고 있고, 북부화장장의 경우 부지가 7만평이고 1988년에 개설하여 대형 2기, 소형 10기, 호이로라고 하는 인체적출물 소각로 1기로 총 13기를 갖추고 있고 시내거주 여부, 고인의 연령의 13세 초과여부 , 사용시간의 정도에 따라 이용료를 책정하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는 화장장으로 이동했는데 천정 전면에 걸쳐 작은 부채꼴 모양 반월형상을 채우며 장엄하면서도 온화하게 화장장 안을 비추고 있었고 화장로가 대차형식의 설비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와 설비적 순환원리는 비슷했지만 화장로 옆으로 영정사진을 놓고 향과 초를 피워 간소하게나마 제를 지낼 수 있는 제상이 놓여져 있다는 점과 다른 화장로 뒤편 조정실 쪽에 유가족들이 볼 수 없도록 호이로라는 인체적출물 또는 조산된 태아를 화장할 수 있는 화장로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상이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화장한 후에 가루로 만드는 골분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화장즉시 바로 커버를 씌워 유가족들이 보고 충격을 받지 않고 만지지 못하도록 해서 습골실로 모십니다. 그 다음커버를 벗겨내고 타고 남은 유골을 긴 나무 젓가락을 이용하여 유가족이나 친지들이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옮겨 왼발, 오른발, 왼다리, 오른다리 순으로 점점 위로 담고 목젖, 마지막으로 머리를 유골함에 나눠 담는데 이런 습골방식 때문에 일본인들은 타인에게 젓가락으로 음식을 건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복도에 보면 손세척기가 있어서 직원들이 이물질이 묻었을 때 즉시 제거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북부재장을 둘러보고 다음 장소로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
건물 내부로 들어갔을 때 가장 눈에 먼저 띄는 것이 바로 저만한 높이에 커다란 꽃화분이었습니다. 너무 요란한 꾸밈이 아니라 조촐하 면서도 멋스런 느낌을 주는 것으로 서툰솜씨가 아닌 분명 전문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솜씨였습니다. 또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벽면에도 탐스럽게 핀 난화분을 전시하여 빈소에 있는 제단이 아니면 꽃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 장례식장은 들어서자마자 어둡고 답답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곳은 사뭇 다른 화사한 분위기가 풍겨서 아무래도 유가족이나 조문객들의 심리적 압박감을 줄이고 분위기를 밝게 정화시키는데 한몫을 할 듯 보였습니다. |
그리고 정중앙에는 영정사진을 놓을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데 제단을 장식하는 부품들은 모두 수공예로 만들어서 크기에 따라 겹쳐 보관하여 유지관리가 쉽고 이동과 설치가 편리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단설치시 작업자의 동선길이를 줄일 수 있고 작업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분리와 해체 또한 쉽게끔 돼있었습니다. 또한 고인의 종교나 제단의 규모에 따라 여러겹의 커텐을 좌우로 움직여 크기를 조절하고 다양한 조명기기를 사용하여 제단장식의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습니다. |
이렇게 제단이기 전에 혼과 얼이 깃들여 있는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최고가의 경우 1억 5천엔에 다다를 정도로 비싼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왜 일본 장례의식의 핵심은 꽃이 중심이 된 제단장식인지 몸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위에 샹들리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줄기모양처럼 자연물을 형상화한 듯한 느낌의 조명으로 가까이 있는 흘러내리는 듯한 흰색 커튼과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며 은은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
또한 일본의 경우 우리와는 달리 2일장으로 첫째날은 시신을 드라이아이스로 냉장보관하여 관에 모셔 제단을 설치하고 유가족들은 밤샘을 하면서 조문객은 밤9시까지만 받고 저녁 7시정도가 조문객이 가장 많은 시간이기 때문에 장례식장 도우미가 조문객 음식대접을 도와드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밤 9시가 넘으면 고인이 모셔진 관을 유가족실로 모셔서 안에 있는 제단에 다시 옮겨 모시고 유가족과 고인이 함께 밤을 지새우는 것입니다. |
진정으로 서비스 질이 좋은 곳은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해서 화장실도 들어가 봤는데 정말 고객을 위한 배려의 집약지였습니다. 일단 화장실 칸에 들어가면 변기닦이용, 손닦기용, 일반화장지 세가지가 구비되어 있고 방향제, 생리패드, 양치질 대 필요한 일회용 종이컵, 너무나 깨끗한 타일바닥, 등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요시다 소사이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직원분들의 너무나도 친절하신 설명과 배려 덕분에 그 어느 곳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다시 버스에 올라 다음 일정에 맞춰 갈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서야 하루일정을 다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저녁 8시경에 1층 로비에서 장례시설 견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이나 달라진 생각을 서로 간단하게 발표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동일한 장소에 함께 가서 같은 것을 보고 들었는데 일본에 와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는 생각은 모두 일치했지만 그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자신만의 의견과 시각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과 결과물은 각자 조금씩은 다른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며 스스로를 조율하고 서로가 자신의 위치에서 장례분야에 더욱 더 열정적으로 임하기를 다짐했습니다. 저 또한 여러 인생선배님들께 짧지만 많이 배웠던 시간인 것 같습니다. |
일본에 가기 위해서 남몰래 일본어 공부하시고 메이크업 학원에도 다니시고, 특히 이번처럼 해외에 장례문화견학의 기회가 있으면 꼭 빠지지 않고 참석하시고 일본에 가서도 끝없이 공부하셔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치열한 세월을 보내오셨다는 말씀, 그리고 우리도 하면 된다는 꿈을 심어주시고 자신이 뒤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겠다는 말씀에 너무 든든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지금 세계적인 경제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례식장 이용료 인하가 아닌 보다 질적으로 향상된 서비스 강화에 힘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선배님과의 만남을 마치고 남은일정을 보낸 후에 오후 4시정도에 다시 일본을 떠나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29명과 일일이 다 작별인사를 나누지 못해 아쉽고 서운했습니다. 3박 4일동안 함께 즐겁게 여행했던 추억은 아직도 생생한 것 같은데 그때 더 잘해드릴껄...더 친해지고 싶었던 분들이 너무 많아서 내년 기회가 된다면 또 함께 일본여행가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일본여행을 이끌어주신 교수님들께 너무 감사드리고 여행을 함께 했던 29명 모두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고 별탈없이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제 딱 중심축이 잡힌만큼 앞으로 마음만 앞서서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히 한계단씩 밟아 나가서 내가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꼭 이 두손으로 일궈낼 수 있는 멋진 젊은이가 되고 싶다는 투지가 생겼습니다. 제 좌우명이 ‘치열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인데 이제서야 진정 내 젊음이 아깝지 않을만큼 치열하게 한번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엔화가 가장 고가일때 일본여행을 가다보니 사정상 참여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는데 제가 챙겨온 팜플렛과 사진자료라도 보여주고 내년에는 미리미리 준비해서 꼭 함께 여행할 수 있도록 추천해야하겠습니다. |
그래서 요근래 우후죽순으로 상조회사와 전문장례식장의 수가 늘어나고 있고 사회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처럼 요즘 우리나라 장례문화는 장례산업의 황금기를 맞이하기 위하여 움츠렸던 몸을 서서히 풀어내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요한 시기에 장례관련업체들이 무분별하게 아무런 대책없이 과도하게 그 규모만을 늘리려고 한다면 황금기로 건너가기 위한 튼튼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버린 쓸모없는 것이 되버리기 일수입니다. |
저는 아직도 일본 장례시설을 방문하면서 백발의 사장님께서 갓 20살이 지난 어린학생에게까지도 일일이 고개숙여 다정다감하고 인자하신 모습으로 예의를 갖춰주시는 것이 눈에 선합니다. 그리고 말도 안통해서 어색한 바디랭귀지에도 웃으며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시고 견학을 마치고 버스에 타고 출발하는데 버스가 멀어져서 보이지 않을때까지 계속 손을 흔들며 잘가라 인사해주시던 직원분들의 환한 미소와 그 마음이 너무 곱디곱고 감사했습니다. 그것은 억지로 지어낸 미소가 아니라 항상 진심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만남은 잠깐이었으나 강열하게 좋은 인상으로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잊혀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기억되는 감동서비스를 기본으로 갖추고 창의적으로 계속 물질적 또는 정신적 질의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면 감동서비스를 기억하는 고객은 꼭 다시 그 기업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나라 장례산업이 허세가 아니라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현명하게 첫단추를 잘 끼워서 초반에 단단하게 기초를 세울 수 있는 탄탄한 문화를 이뤄나가길 바랍니다. 그래서 길고 긴 겨울밤이 지나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동트는 것과 같은 현재의 장례문화 도약기를 잘 딛고 일어서 아침의 찬란한 황금빛 태양이 눈부시게 다가올 황금기로 가는데 한결 당차고 멋진 모습으로 힘차게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
---------------------------------------------------------------------------- ▶아직 어린 여학생의 신분으로 외국의 장례문화 현장을 보고 정성스럽게 쓴 견학기를 보고 난 소감은 한마디로 대견스럽다는 것이다. 이런 소중한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우리나라 장례산업이 내용면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고객만족의 기업 정신이 빛나기를 기대하며 전문을 싣는다<편집자-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