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들이 쓰는 유언장은 어떻게 다를까. 피천득 황금찬 도종환 이해인 전상국 한말숙 이해인 공선옥 하성란 등 노장청에 이르는 한국사회 문인 101명에게 가상 유언장을 쓰게 하고 그 ‘답안지’를 묶어낸 책이 ‘오늘은 내 남은 생의 첫날’(경덕출판사)이다. ‘공개될’ 유언장을 의식해 미사려구를 동원한 문인들도 있고, 실제로 당장 오늘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는 생의 불안을 감안해 진지하게 유산배분까지 거론한 이들도 있다. 가장 솔직하고 감동적인 유언장을 쓴 이는 소설가 공선옥이다. 유달리 가난과 모성을 천착해 글을 써온 그는 “대학은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기어코 나와야 쓴다. 왜냐하면, 아직 이땅의 현실이 고등학교만 나온 여자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이다. 네가 특별한 재능이 있다 해도 그걸 뒷받침해 줄 상황이 안되니, 너는 어떡하든 동생들을 거두어 먹여야 할 가장 책임 때문에라도 대학을 가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만약에 대학에 갈 형편이 안되면 엄마와 평소에 친분이 있던 어른들(그분들 명단은 별첨하겠다)을 찾아가거라. 그래서 돈이든, 뭐든, 일단 도움을 요청하거라… 내 사랑, 내 심장, 내 피, 내 살, 내 새끼들”이라고 썼다. “혼자라고 울지 마. 네가 처음으로 엄마 없이 친구들 손을 잡고 백화점에 갔던 것처럼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힘차게 나아가렴”(소설가 하성란) 같은 쓸쓸한 유언은 담백해서 슬프다. 소설가 한말숙은 거두절미하고 “너희 아빠의 재혼은 안된다. 아빠는 손이 안가는 분이시니까 너희들 중 여건이 맞은 사람이 아빠 가까이서 살면 된다”고 했다. 지독한 사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