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로 왔다가 연기로 떠서 세상을 돌아다니고, 그래서 또 연기로 만난다. 우리는 걱정이 많다. 욕심의 노예로 산다. 오늘부터 욕심을 끊어버릴 거다. 사람은 숨이 끊어지면 목석과 같다. 사람이 잘났다고 하더라도, 눈 딱 감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 여기(이승)서는 인연을 맺어서 ‘내 식구, 내 새끼라고 야단법석 치지만, 저 세상에는 내 식구가 없이 다 똑같다. 너무 욕심들 내지 말아."
5일 오전 10시 30분 고(故) 신성일(81·본명 강신성일)의 입관식이 서울아산병원 장래식장에서 치러졌다. 아내 엄앵란(82)은 자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남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입관식 후 엄앵란은 "인생은 연기"라고 했다. 그들의 직업이었던 ‘연기(演技)’가 아니라, 하늘로 사라지는 연기(煙氣)라는 뜻이었다.
◇‘인생무상’ 읊조린 송해
부음이 전해진 지 이틀째에도 영화계·방송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방송인 송해(91)는 이날 오전 10시 20분쯤 빈소를 찾았다. "‘영화계의 별이 졌다’고 하더라. (신성일을) 숭상하는 후배들도 많다고 해서 고맙게 생각한다. 얼마 전 신성일·엄앵란 부부와 식사하면서 영화 이야기를 했다. 희망을 이야기하던 사람이 이렇게 가고…운명이고 팔자다. 잘 가요! ‘마지막 특집’을 보여준다면서 안 보여주고 가면 어떡해. 거기 가시면 검열도 없다. 그곳에서 영화 많이 보여주시고 왕성히 활동하십시오." 송해는 신성일의 사진 앞에서 고개를 푹 숙여 인사했다. 조문을 마치고 돌아가던 송해는 혼잣말로 "인생무상이야 인생무상"이라고 중얼거렸다.
배우 양택조(79)는 신성일에 대해 "인생 자체가 영화다. 성일이형, 건방지게 먼저 가네. 나도 여든이니까…뒤쫓아 가겠소"라고 했고, 배우 김창숙(69)도 "그 분과 같이 영화를 했다는 것에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방송인 정은아(53)도 빈소를 찾아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신인 후배도 존중하고 진지하게 만남을 가져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엄앵란 선생님과의 삶을 통해 사람들에게 많은 생각을 해 볼 기회를 주셨다"고 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았다. 이 전 총재가 한나라당 총재이던 시절, 신성일은 한나라당 소속으로 제16대 국회의원(2000년 5월~2004년 4월)을 지냈다. 2001년에는 한나라당 총재 특보도 맡았다. 이 전 총재는 "한나라당에서 같이 고생했다. 고인과 엄앵란 여사 두 분의 은혜를 잊지 못한다"며 "고인을 보면 ‘천의무봉’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꾸밈이 없고, 거리낌이 없고, 거짓이 없었다"며 "(폐암에서) 회복하는 줄 알았는데 마음이 아프다.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신성일은 우리네 청춘의 상징…팬들도 조문 행렬
팬들도 빈소를 찾았다. 장례식장 안까지 들어가지 못하고 입구에서 서성였다. 이들은 먼 발치에서 빈소를 지켜보면서, 신성일이 주연으로 나온 영화 ‘맨발의 청춘’(1964년 작)’과 ‘별들의 고향’(1974년 작) 이야기를 했다.
인천에서 왔다는 우명선(66)씨를 선두로 여럿이 함게 빈소로 들어갔다. 우씨는 "저는 신성일이 나온 영화를 50편도 넘게 본 ‘광팬’"이라면서 "그는 내 학창시절의 상징과도 같던 사람이라, 마지막 가는 길을 보고 싶어 인천에서 왔다"고 말했다.
헌화에 나선 또 다른 팬 김창수(61)씨는 "정기검진 차 병원에 왔다가 겸사겸사 빈소를 찾았다"면서 "지금은 잊혀진 배우겠지만, 우리 세대는 신성일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었다. 그는 ‘로맨티스트’ 그 자체였다"고 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조문하기 위해 왔다는 황정순(71)씨는 "고교시절에는 펜레터도 써서 보냈는데, 어느 날 결혼한다는 이야기 듣고 낙심했다"면서 "지난해 경북 영천에서 우연히 봤을 때만 해도 정정해 보였는데 이렇게 빨리…"라면서 눈물을 비쳤다. [출처 :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