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벽인가, 문인가?

  • 등록 2024.09.03 10: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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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중에도 주어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

 

[중략]
과연 죽음은 깜깜한 어둠이고 영원한 공허일까요? 과연 죽음은 꽉 막힌 벽일까요? 죽음을 벽으로 여길 것인지 아니면 벽에 나 있는 문이어서 문 저편의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이라고 여길지에 따라, 삶을 살아가는 태도와 방식이 크게 달라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굿바이 good & bye’는 죽음과 용서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오케스트라의 첼로 연주자인 주인공은 악단이 갑자기 해체되는 바람에 실직한 후 고향에 내려가 일자리를 찾던 중, 여행 도우미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찾아간 곳이 사실은 ‘영원한 여행’ 도우미, 즉 시신을 염습해 입관하는 일을 하는 장례업체였죠. 보수를 후하게 줄 테니 함께 일하자는 사장의 제안을 엉겁결에 받아들인 후 염습사로서 겪게 되는 여러 에피소드들이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유머러스하게 그려집니다. 
 
주인공의 어릴 적 친구 어머니는, 건물을 헐고 큰 빌딩을 짓자고 떼를 쓰는 아들의 성화에도 오랜 단골손님들의 신의를 저버릴 수 없다며 변함없이 목욕탕을 운영해 오던 중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주인공은 경건하고도 정성을 다한 염습을 해드리고 시신은 화장터의 화장로로 옮겨지는데, 목욕탕의 수십 년 단골손님이자 오랜 세월 화장로의 불을 지피는 일을 해 온 노인은, 뒤늦은 후회로 흐느껴 우는 고인의 아들에게 슬픔을 누르며 이야기합니다. 
 
“여기 화장터에서 오래 일하면서 알게 됐지. 죽음은 문이야. 죽는다는 건 끝이 아니야. 죽음을 통과해 나가서 다음 세상으로 향하는 거지. 난 문지기로서 많은 사람을 배웅했지.”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노인의 시각처럼, 죽음을 문으로 보는 죽음관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긍정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줍니다. 미국에서 발간된 방대한 분량의 죽음학 책 ‘생의 마지막 춤: 죽음, 죽어감과 대면하기 The Last Dance; Encountering Death and Dying’의 서문에서도, 죽음을 벽으로 볼 것인지 문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스위스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분석심리학을 창시한 칼 구스타브 융은 그의 수제자였던 폰 프란츠 여사를 통해 “죽음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또한 융 자신도 생전에 썼던 편지에서 “죽음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일은 말할 수 없이 위대해서 우리의 상상이나 감정이 제대로 파악하기조차 어렵다”고 했지요.
 

 


여행으로 치자면 가면 돌아오지 않을 여행, 왕복이 아닌 편도 여행이라고 할 죽음의 여정을 대비하여 어떤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도착할 곳이 어떤 곳일지, 가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을 겪게 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2015년9월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과학자와 의사들이 미국 애리조나주 투손(Tucson)에 모여 의식의 비국지성(Non-locality)과 불멸성에 대한 선언문을 발표하였습니다. 모임의 목적은 우리가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알아보고, 이를 임종기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게 자비롭고 인도적인 돌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11개 조항으로 된 이 선언문의 주요 내용은, 우리 의식은 뇌 같은 특정한 곳이나 특정한 시간에 한정되지 않고 육체의 죽음 뒤에도 계속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선언에는 생물학, 신경과학, 심리학, 의학, 정신의학을 전공한 학자와 다수의 임상의사도 참가하였습니다. 사람이 죽더라도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체나 영혼은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자들이 선언한 것이죠.
 
물질적인 관심에만 붙들려 살다 가기에는 우리가 찾아야 하는 삶의 의미들은 실로 심대하고 무궁합니다. “우리는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고통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지속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언젠가는 누구나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서 성찰할 때 비로소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나와 타인, 나와 우주가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도 죽음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합니다.

 

[글: 정현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의 ‘죽음, 또 다른 출발’ (3)]

[출처 : ]
 

앤딩플래너 김동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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